전에도 그랬어

 남과 여, 분절되는 이미지와 언어의 향연

 

입체 낭송극이라니... 듣도 보도 못한 장르다. 이 새로운 장르와 묘한 포스터 때문에 공연을 보러 나섰다. 기대했던 것만큼 묘한 형태의 공연이었다. 사실 낭송극이라고 해서 낭송을 하는 사람과 그것을 이미지로 구현하는 사람이 따로 있는 줄 알았다. 그것은 아니었다. 배우들이 낭송과 이미지를 함께 만들어 나갔다. 극은 여러 배우들이 모두 정면을 응시하고 최민의 시를 읊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런데 그것이 서로 일정한 간격을 가짐으로써 이 시가 저 시와 이어지고 저 시는 또 다른 시와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놓여진다. 반복되어지는 단어와 문장과 운율이 극장에 울려퍼진다. 시의 희극화? 희극의 시 같은 모습에 떠올리게 되는 것은 최인훈의 희곡집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였다. 그의 글은 희곡임에도 시같고 멋드려졌으니까 극이 시작되고 떠오른 최인훈의 희곡집으로 기대에 부풀게 되었다. 멋진 공연을 볼 수 있을 것만 같은.

 

묘한 맞물림이 있는 낭송이 끝나고 음악에 맞추어 리드미컬한 몸놀림으로 배우들이 퇴장한다. 작은 상자 위에 올라 서 있던 드레스를 입은 여배우가 노래를 부른다. 거친 호흡을 보이던 그녀는 바닥으로 내려서는데 무릅을 굽힌상태에서 움직이며 기이한 모습을 보인다. 또 다른 배우의 등장. 목발을 한 여성이 기이한 동작으로 움직인다. 그리고 좋단다. 바람이어서 너와 내가 바람이어서 좋단다. 이런 식으로 분절된 이미지와 단어가 나열되므로써 이야기가 모자이크처럼 덕지덕지 붙어있는 느낌이 든다. 그렇게 배우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하고 서로를 마주보지 않는 것처럼 보였는데, 같은 방향만을 보던 한복에 헬멧을 쓴 이와 썬글라스에 헤드폰을 끼고 있던 이가 마주보고 대화를 한다. 그건 대화였을까 싶은 단어의 나열이기는 하다. 서로의 말이 통하지 않는 듯, 소리냄을 즐거워하는 아이들처럼 그들의 말은 소통과 이해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 듯 하다. 비록 수화기 넘어 소리내기 놀이가 소통의 부재로 끝났지만 그것은 첫 시도였다. 그리고 그 후, 스치듯 지날 것 같던 네 남녀가 서로를 마주보고 몸을 맞대고 대화를 한다. 생수통, 바구니, 철가방, 이민가방(?)을 든 기괴한 모습을 한 채.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하던 두 남녀가 함께 떠난다. 자 이제 그 분절들이 모여 하나의 절정을 향해 가는 것인가라는 생각을 들게 만들지만 다시 이야기는 생각치 못한 이미지를 방출해 낸다. 트로트 음악에 춤을 춰대는 배우들. 만약 그들이 내뱉는 시만을 종이 위에서 읽었다면 그것을 읽어내는 데 있어서 독자 각자가 너무나 다양한 해석을 양상해 내었을 것이다. 그런데 배우들의 동작과 음악을 들으면 그들이 내뱉는 이야기들이 결코 책상 머리에 앉아서 철학을 갖고 써졌기 보다는 어느 해안가 혹은 관광버스 안의 풍경을 보면서 쓰여졌을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힌다. 작가가 연출가에게 단지 글을 툭 던져놓고 연출가의 머리에서 모든 장면이 만들어졌는지 작가가 이런 장면을 원했는지 궁금했다.

 

 

  착한 나이키 신발 주인, 입냄새 나는 프로스펙스 신발 주인, 눈이 큰 작업화의 주인, 개새끼 검정 구두 주인, 개새끼 보다 못한 아디다스 신발 주인... 그렇게 12개의 신발 주인이 둥그렇게 열거되어지며 놓인다. 6개는 시계방향으로 나머지 6개는 그 반대방향으로. 여자는 시계방향으로 돈다. 깡총깡총 고무줄 놀이를 하듯 신발로 만들어진 원 안에 들고 난다. 전에도 그랬어. 남과 여의 관계와 그들이 보이는 모습은 전에도 그랬어. 극은 시작과 같은 모습을 갖는다. 전에도 그랬듯이.

 

  60분의 짧은 시간동안 그들이 보여준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공연이 좋았다. 좌석이 배우들의 정면과 왼편에 놓여있는데 정면 관객만을 위한 공연이 이루어졌다. 왼쪽에 앉은 나는 슬펐다. 여러 대사가 겹칠 때 무대 오른쪽 정면 관객 앞에 서서 대사를 하면 내 자리에서는 하나도 들리지 않는다고... 왼쪽 정면 관객 앞에 섰으면 들렸을 텐데. 음악이 흐르지 않고 배우 하나가 독백을 할 때는 극장이 조용한데 무대 뒤에 있는 배우들이 옷을 갈아입고 이것저것 하는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렸다. 바닥이 삐걱거리는 소리도.

Posted by 가나다라마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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