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피는 인상적인 풍경으로 여행자들을 사로 잡는다. 돌무더기와 그 사이의 폐허가 된 유적, 주변으로 펼쳐지는 푸른 농경지와 야자수는 아무리봐도 질리지 않는다. 14~17세기 이 돌무더기 사이에 왕국을 만들고 살아간 이들이 있었다. 힌두왕조인 비자야나가르 왕국이었고 이곳이 그 수도였다. 북쪽에서부터 막강한 화력으로 밀고 내려오는 무슬림제국에 의해 망하고 이곳은 폐허로 남았다. 그렇다고 이곳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닐 거다. 농사를 지을 땅이 있고 강이 흐르기에 계속 이 땅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돌로 만들어진 유적 안에 있는 귀중품들은 모두 약탈 당했겠지만 돌로 만들어진 건물을 약탈하지도 불태우지도 않았으니 그곳에 계속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침략자에 의해 모두 도륙되거나 노예로 끌려갔을 지도 모른다. 오래된 유적들 중 바자르 주변의 많은 집들이 사람들에 의해 고쳐져서 이용되고 있었다. 어찌 봐도 수백전 비자야나가르 왕국의 건물인데 페인트를 칠하고 리모델링(?)을 거쳐서 집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어쩌면 이삼백년전 이곳으로 흘러들어와서 빈 집을 보고 살게 되었을 지도 모른다. 최근에 함피를 다녀온 이들의 사진을 보니 이것들이 원형을 복구되어가는 모습을 보였다. 세계문화유산인만큼 보존되고 있나보다. 1986년에 지정되었는데 점점 함피를 찾는 이들이 많아졌기 때문일까? 정권이 바뀌어서 인가? 하여간 더 좋기도 하고 안 좋기도 하다.
인도하면 사람과의 부대낌이 먼저 심적 부담으로 다가온다. 그런데도 또 가고 싶다. 그 중에 남부 도시 중에서 오래 머물 수 있겠다 싶은 곳이 바르깔라와 함께 함피다. 지금 지도를 보니 그리 남쪽도 아니네. 함피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81곳의 장소가 표시된 지도와 정보가 있다. 오래 머물며 하나씩 구경 다니고 싶다. 지금은 방값을 비롯해서 많은 것의 가격이 오른 것 같다. 인터넷이 잘 되는 숙소에 책상만 있다면 한달간 렌트하기로 하고 큰 할인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6개월 인도 비자를 받아서 한 도시에 한주씩 여행을 하고 싶기도 하고 괜찮은 방 구해서 몇달간 머물고 싶기도 하다.
http://hampi.in/
함피에 태국 콘도 같은 건물이 하나 있으면 장기 체류자들로 방을 가득 채울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그 건물로 인해 풍경이 별로일 것 같고 허가도 안 날 것 같지만 말이다. 에어콘이 잘 나오고 인터넷도 잘되고 깔끔하고 베란다가 있고, 큰 책상과 푹신한 매트리스가 있는데 월세는 20만원인 태국 콘도를 통째로 옮겨서 함피에 가져다 놓고 싶다. 함피의 열악한 숙소가 하룻밤에 2만원이 넘어간다는 글들을 읽으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날 좋은 날 나도 빨래를 해서 저렇게 말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가 소가 그 위로 참 자유롭게 다니는 걸 보고 관두었다.
사진은 너무나 순식간에 순간을 기록한다. 왠지 함피와는 어울리는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렬하게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드로잉북이 있다면 건물 하나하나, 동서남북 보이는 풍경들을 그리고 싶었다. 전혀 닮지 않은 그림 하나를 그리는데 3시간이 걸려도, 반나절이 걸려도 상관이 없다. 함피에서 무얼 하겠는가.
2016년 가을을 태국 후아힌에서 보내고 있다. 겨울은 베트남을 생각하고 있었다. 근데 하드디스크 포화상태로 옛날 사진들을 지우려고 훑어보다보니 인도를 가고 싶어졌다. 그래서 열심히 구글링하고 있는데 태국이나 베트남만큼의 괜찮은 집을 싸게 장기렌트하는 게 쉽지 않다. 싸지만 너무 허름하다. 비싼 곳은 너무 비싸다. 그래서 머뭄보다는 평일 5일간 한도시에 머물고 주말에 이동하는 여행을 꿈꾸게 되었다. 베트남 보다 먼저 갈 지 내년 봄에 가게 될 지는 모르겠다. 중국 윈난성에서 한 계절을 보낼 생각도 있어서 순서가 어떻게 될 지는 모르겠지만 2017년의 절반은 인도에서 보내게 될 것 같다.
내년에 함피를 가게 된다면 드로잉북을 가져갈 꺼다. 매일 그림을 그려야지. 난 정말 그림을 못 그리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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