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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메고 떠나다/인디아 여행기

[함피] 비루팍샤 사원, 신은 언제나 그 곳에.


 사내의 눈에 비루팍샤 사원의 새하얀 고뿌람이 눈에 들어왔다. 오랜시간 꿈꿔왔던 순간이 이제 코 앞에 와 있는 것이다. 사내는 한참동안 고뿌람 위아래를 훓어본다. 저 거대한 고뿌람 어딘가에 반지가 숨겨져 있을 터였다. 사원 앞으로는 넓은 길이 나 있었고 길양쪽으로는 수백년 전 무슬림의 침략으로 폐허가 된 왕국의 유적이 즐비했다. 비자야나가라 사람들은 그 유적을 고쳐서 살고 있었다. 사내는 사원 앞 바자르에서 바나나를 몇 송이 산 후 사원에서 가까운 골목길을 들어섰다. 저렴하지만 주인과 자주 마주치지 않을 숙소를 구해야했다.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고뿌람을 오르내리며 반지를 찾으려면 며칠이 걸릴 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비루팍샤 사원의 공사는 400년간 지속되었다. 작은 사원을 조금씩 손을 보면서 고치고 확장해 나갔다. 그 공사에는 사내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들이 있었다. 그의 조상들은 대대로 비자야나가라 왕국에서 살아왔다. 사내의 집안에는 대대로 두번째 아들에게만 전해져내려온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었다. 사내는 어린시절부터 수백번 이야기를 들었고 어느 순간 그 이야기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되었다. 그러니까 사내는 수백년전 비루팍샤 사원 고뿌람에 반지를 숨진 남자의 두번째 아들의 두번째 아들의 두번째 아들의 두번째 아들의 두번째 아들...... 이었던 것이다. 어쩌면 그 중에 첫번째 아들이, 세번째 딸이 있었을 지도 모른다. 두번째 아들이 태어나지 않는다면 이야기를 할 사람이 사라지는데 비밀을 가진 매력적인 이야기는 언제나 대나무숲이 필요한 법이니까.




 비루팍샤 사원은 함비 여행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함피 바자르에 자리하고 있다. 여행자들 눈에 쉽게 띄는 곳이기에 함피를 찾는 이들에게 익숙한 건물이다. 내가 사내를 만난 곳이기도 하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늙은 사내는 오물오물 끊임없이 이야기를 했다. 나는 그날 그의 대나무숲이 되었다. 젊은 시절 마두라이를 떠나 혈혈단신 함피로 와서 수십년을 살아온 이야기는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일들로 가득했지만 너무나 매력적이어서 매일같이 그를 찾아갈 수 밖에 없게 만들었다. 돌무더기 가득한 폐허가 된 도시가 되어버린 함피, 한때 인구 50만의 거대한 도시였던 비자야나가라의 멸망. 그 안에 숨겨졌던 일들. 함피의 비현실적인 풍경에 덧붙여진 사내의 이야기를 들었던 시간이 꿈만 같다. 실제로 그 사내가 있었는지 내가 그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은 것이 맞는 지 헷갈릴 정도다. 그는 그저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힌디어로 자신의 삶을 넋두리하던 촌부인데 나 혼자 사원에 앉아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마저 하게된다.





 사내가 내게 해 준 이야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