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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메고 떠나다/인디아 여행기

조드뿌르 우메이드 바완 팰리스



우메이드 바완 팰리스는 마하라자 우메이드 싱에 의해 1943년 완공된 아시아에서 가장 큰 왕궁이다. 여기서 우메이드는 왕이라는 의미이고 뒤에 붙는 싱은 사자를 의미하는데 용맹함을 나타내기 위해서 이름 뒤에 붙였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싱하맥주의 싱하가 태국어로 사자를 의미하니까 태국의 문자가 산스크리트어로 된 불경을 번역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을 생각하면 인도에서 영향을 받은 언어도 꽤 될 것 같다. 이 왕궁을 설계한 헨리 랭체스터가 델리 대통령궁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델리 왕궁과 비슷한 느낌이다.

왕궁이라고 해서 적어도 근대 이전에 만들어졌을 거라고 생각했다. 백년을 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1943년에 궁이 지어졌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특히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것이 1946년이다. 그러면 영국의 식민지 시대에 지어졌다는 것인데 이 동네 왕족은 독립운동을 하지 않고 영국 정부에 협력해서 그들의 부와 권력을 이어왔다는 것일까? 해양무역을 중요시했던 영국이 조드푸르를 비롯한 라자스탄 지방을 온전히 차지하려고 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인도를 통일했던 무굴제국조차 라자스탄을 차지하지 못할만큼 이 동네는 강했으니까.





어떤 이야기가 숨겨있는지 모르겠지만 인도는 독립 후 공화국을 세운 후에도 각 지방에 있는 왕족의 재산을 몰수하지 않았다. 각 지방의 토호와 왕족이 그 동네에 비치는 영향력이 컸기 때문에 그들과 싸우면서 새로운 인도를 만들어가는데 부담이 있었을 것이다. 고려가 통일되고 호족들을 인정해주었던 것과 비슷하려나? 그러니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상당부분 인정해주면서 인도라는 국가에 힘이 되어주기를 바랬을 것이다. 당연히 이들의 재산은 어마어마했고 그 후손들은 그 돈으로 현재까지 정치적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 경제력에 의한 영향력 뿐 아니라 실제로 정계로 진출한 이들도 많다. 현대국가가 되었음에도 부와 권력이 수백년간 그대로 세습되고 있는 셈이다. 우메이드 바완 팰리스는 346개의 방을 가지고 있는데 1977년부터 100개 정도의 방을 호텔 객실로 개조해서 운영하고 일부는 박물관으로 일부는 왕의 후손들이 거주하고 있다. 객실은 하룻밤에 백만원이 넘는 최고급으로 왕족들은 오늘도 자고 일어나면 돈이 마구 쌓이고 있다.




부의 세습, 권력의 세습에 대한 저항이 약한 동네인가보다. 힌두교, 카스트제도 같은 것이 결국 이러한 문화를 만든 것이 아닐까? 식민지 시대, 독립을 거치면서 큰 변화가 있었지만 결국 수천년과 이 땅에 자리하고 있는 종교와 문화는 바뀌기 어려운 것 같다. 남부의 께랄라주의 경우처럼 공산당이 집권하면서 인도의 다른 지방보다는 조금 다른 모습을 보이는 곳도 있지만.








박물관에는 고급스러운 생활용품과 장식품들이 전시되어있다. 오래전 왕궁의 역사가 아니라 그런지 괜히 베베꼬인 생각이 든다. 이런 으리으리한 궁에서 사치스러운 생활을 할 동안 궁 밖의 인도인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었을까하는...


























조드푸르 넘버원이라 쓰인 차도 야외전시장에 전시되어있다. 역시 조드푸르의 첫 차도 왕이 먼저 탔겠지. 세계사에서 인도역사를 배울 때 갠지스 문명, 무굴제국, 독립사 정도를 배웠던 기억이 난다. 근데 인도 여행을 하게 되면 가장 흥미로운 것은 각 지방에 자리한 작은 왕국들의 존재다. 





정원에 공작도 돌아다닌다. 인도에서는 수풀이 있는 곳에서는 의외로 그냥 돌아다니는 공작새를 많이 보게된다.





투숙객이 아니면 호텔 로비조차 들어갈 수 없다.





우메이드 바완 팰리스로 올라가는 길은 생각보다 길어서 구름 한점 없는 뜨거운 햇살을 맡으며 걸어서 올라올 때 꽤 힘들었다. 내려갈 때는 호텔에 뭔가를 납품하는 트럭이 태워주어서 편하게 내려왔다. 트럭 위에 저 멀리 흐리게 우뚝 서 있는 것이 메헤랑가르 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