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수상한 흥신소

 

 고스트 위스퍼러의 연극판

 

  연극 <수상한 흥신소>는 관객들에게 재미와 감동을 줘야한다는 강박을 가진 누군가에 의해 쓰여진 전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굳이 그럴 필요 없지 않나? 재미만 주어도 되고, 감동이 아니어도 그냥 생각할 거리를 하나만 쓰윽 던져주는 것만으로 충분한데 왜 이리 감동을 주려고 노력하는 지 모르겠다. 영혼의 존재 때문에 얼마전 보았던 연극 <미라클>이 떠올랐지만 그건 살아있는 사람의 영혼이 빠져나오는 것이고 <수상한 흥신소>는 죽은 사람의 영혼을 볼 수 있는 사람이 그들의 문제들을 해결한다는 내용이어서 금방 그 연계성은 사라졌다. 그리고 떠오른 것은 미드 <Ghost Whisperer>다. 설정이 같다. 영혼을 볼 수 있는 여자가 자신의 앞에 나타나는 영혼들의 소원과 문제를 해결해 주는 일 말이다. 물론 <수상한 흥신소>에서는 매력적인 글래머러스한 여인이 등장하지 않고 청년 백수가 등장한다. 고스트 위스퍼러는 굉장히 재밌게 봤던 몇 안되는 미드다.

 

 

고스트 위스퍼러의 제니퍼 러브 휴잇처럼 사랑스럽고 포스있지는 않지만 <수상한 흥신소>의 우리의 상우도 꽤 매력적인 인물이다. <Ghost Whisperer>를 떠올리게 되자 <수상한 흥신소>에서 느꼈던 것들이 왜 그랬는지 더 명확해 졌다. 극은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그래서 산만하게 느껴지고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지 모호해 진다. 미드나 시트콤이었다면 1회에 하나의 에피소드만 보여주었을 것을 한번에 몰아서 보여줘야 하므로 그럴 수 밖에 없다. 그러한 한계를 벗어나고자 극은 하나의 에피소드 후에 또 다른 에피소드를 넣지 않고 다양한 이야기를 섞어서 진행되어진다. <수상한 흥신소>를 조금 달리 보여주고자 한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생각해 보았지만 딱히 생각나지 않는다. 이 이야기로 할 수 있는 테두리 안에서 가장 노력한 것 같다. 그래도 왠지 모를 아쉬움이 남는 것은 무엇일까? 이 공연을 보기 전날 <디너>를 봤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중년배우들의 연기포스 때문에 결코 가벼운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님에도 가볍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상우가 만약 연극배우를 하기로 결말이 이루어졌다면 씁쓸한 마음이 들었을 것 같다. 그가 계속 <수상한 흥신소>를 운영해서 다행이다. 죽어서도 이승을 떠돌아 다니는 영혼들은 아직 영혼으로만 존재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의 상상력으로는 기이한 사연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되어진다. 그리고 그 제한된 상상력을 가진 누군가가 이 희곡을 썼을 테고. 영혼의 존재에 대한 미스테리가 풀리는 날이 올까? 그렇게 되면 동물과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있듯이 영혼과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나타날까? ... 음... 신내림을 받은 사람들이 있었다. 잠깐 잊고 있었다. 그들이 하는 일이 <수상한 흥신소>가 하는 일과 다르지 않구나... 단지 영혼의 말을 그들이 직접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에게 전달해 줄 뿐...

공연장은 자유석이어서 빨리 들어가서 좋은 자리에 앉는 것이 짱땡이다. 내가 봤을 때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편한 자세로 이리 저리 자세를 바꾸면서 볼 수 있었는데 사람이 많다면 배우 불편할 것 같았다. 엉덩이를 의자에 바싹 붙여도 앞의자에 무릅이 닿았다.

 

Posted by 가나다라마ma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