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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아 파스트라나의 기구한 삶, 153년만의 장례식


줄리아 파스트라나의 기구한 삶, 153년만의 장례식


2012년 2월 12일, 사망한지 152년만에 한 여인이 고향땅에 묻혔다.

그녀는 1834년 멕시코의 시날로아데레이바에서 태어난 파스트라나다.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몇가지 병을 앓고 있었는데 온몸에 많은 털이 나는 다모증과 잇몸과 입술 등이 눈에 띄게 튀어나오는 잇몸증식증이었다.

그 생김새가 얼핏 원숭이처럼 생겨 원숭이인간 온 몸에 난 털로인해 늑대인간으로 불리기도 했다. 

성인이 되기 전에 그녀가 어떻게 살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녀의 삶이 크게 바뀌게 된 것은 1954년 그녀가 20살때였다.



미국의 공연기획자 티오도르 렌트에 의해서 그녀는 무대 위에 서게 된다.

당시에는 외모에 독특한 기형을 가진 사람들은 모아서 쇼를 하는 Freak Show가 유행하던 때였다.

렌트는 줄리아 파스트라나를 뉴욕타임스에 '인류와 오랑우탄읜 중간고리'라면서 광고했고 그녀는 곧

암곰 인간, 여성 유인원, 세계에서 가장 못 생긴 여자 등의 별명을 얻으며 유명해졌다.

렌트는 곧 파스트라나와 결혼했는데 그건 그녀의 인기가 벌어들이는 수익을 가지기 위한 것으로 보였다.


 


남다른 외모를 가졌을 뿐 그녀는 매우 똑똑했다. 그녀는 스페인어와 영어에 능통했고 무대에서 보여주는 노래, 춤, 연기에도 재능을 보였다.

하지만 독특한 외모 때문에 사람들의 볼거리 이상이 될 수는 없었다. 렌트는 그녀를 데리고 미국과 유럽을 돌면서 돈을 벌여들였다.

게다가 그녀에게 관심이 있는 의사들이 연구를 하도록하고 돈을 받아챙겼다.

그러던 중 파스트라나가 임신을 하게 된다. 그녀가 모스크바에서 낳은 아이도 그녀와 같이 다모증과 잇몸증식증을 가진채로 태어난다.

그마저도 이틀만에 죽고 만다. 자신의 기구한 삶과 아이의 죽음을 견딜 수 없었던지 줄리아도 얼마되지 않아 26살의 어린나이에 죽고 만다.


  


그녀의 죽음 이후 더 기가막힌 일이 벌어지는데 남편 렌트가 파스트라나와 그 아이를 장례식을 치르기는 커녕 방부처리한 것이다.

그리고는 그 미라를 가지고 5년간 세계를 돌며 쇼를 계속해 돈을 벌었다. 그렇게 죽어서도 사람들의 볼거리로 떠돌던 줄리아와 그의 아이는

노르웨이의 오슬로 대학에 남게된다.

  


그 후 2005년 멕시코의 예술가 로라 안데르손의 주도로 줄리아 파스트라나를 조국에 묻어야한다는 캠페인 벌어지고 결국 그녀의 유해는 멕시코의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다.

사람들은 그녀의 슬픈 삶 그리고 죽음 이후의 시간까지도 치유되기를 바라며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란다.

다름을 구경거리로 삼아서는 절대 안된다.


 

 

줄리아가 돌아오던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