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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메고 떠나다/스리랑카 여행

신할 왕국의 수도 아누라다푸라




네곰보에서 아누라다푸라로 바로 가는 버스가 없어서 중간(Kurunegala)에 갈아타야했다. 그나마 여러명에게 물어봐서 북쪽 방향으로 처음부터 방향을 잡을 수 있었는데 버스터미널에 있던 어떤 기사 무리는 콜롬보로 돌아가서 타야한다고 했다. 여러명에게 묻지 않고 터미널에서 그 기사들에게 먼저 물었으면 콜롬보로 먼저 갈 뻔 했다. 털컹거리는 버스와 좁은 자리에 한덩치하는 아저씨가 옆자리에 앉아서 더 힘들었다. 거의 6시간을 달렸다. 스리랑카에서 이동 중 최장거리였다. 아누라다푸라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녹초가 되어있었는데 심지어 6시간동안 창문 밖에서 들어온 매연과 먼지로 얼굴에선 떼구정물이 흘렀다.






▼ 버스를 갈아탄 쿠루네갈라




아누라다푸라는 오래된 도시라는 의미로 기원전 5세기부터 1300년 이상 신할리 왕국의 수도였다. 당시 인구가 50만이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하는데 그게 가능한 것인지, 세를 과시하기 위해 과장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사실이라면 엄청난 도시였던 것이 분명하다. 인도에서 넘어온 타밀족의 침략으로 수도를 플론나루와로 옮기게 되고 도시는 파괴되었다. 지금은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있다. 그리 넓지 않은 지역에 유적들이 모여있어서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기에 최고라고 생각한다. 아누라다푸라 일대를 4-5시간 둘러보는 뚝뚝이 2천루피 정도인 듯했다. 물론 이야기가 잘 되면 더 싸게 될 수도 있겠지만 배낭여행자에게는 부담스런 가격이다. 무엇보다 지도를 보니 가로세로 3km 안에 전부 들어있었다. 이걸 왜 뚝뚝을 타고 다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 필요한 건 자전거였다. 앙코르 유적지도 자전거 타고 다녔는데 여긴 훨씬 좁은 지역이다. 게다가 유적지가 도심하고도 가깝고. 하지만 난 자전거를 빌리지 못했다. 내가 묵은 숙소엔 자전거 대여 서비스가 없었고 거리의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걸었다. 햇살이 뜨거워서 정말 힘들었다. 종종 지나가는 자전거를 탄 외국인을 굉장히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다가 결국 다가가서 물으니 레이크뷰 게스트하우스에서 빌렸단다. 이미 글렀다. 거기까지 언제 또 걸어가겠어.







아바야기리 스투파는 워낙 높아서 주변에서 쉽게 눈에 띈다. 3-4세기에 지어졌다가 12세기에 리노베이션되었는데 그 높이가 120미터나 된다. 지금 남아 있는 것은 73미터다. 위의 50미터가 부서져버렸다. 그래도 높다. 구글링 해보니 옛날 사진에는 여기 위에 풀과 나무로 뒤덮여 있는 것도 있다. 벽돌로 쌓아놓은 것인데도 방치하면 그렇게 되나보다. 한때 승려가 5천명이나 있었던 사원이었는데 지금은 이 스투파만 우뚝 솟아있고 주변은 폐허가 된 모습 그대로 있다. 밤이 깊으면 폐허가 된 이 곳에 원숭이들만 남아있겠지. 스리랑카는 당연히 소승불교이고 유적지도 당연히 모두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곳은 대승불교의 본산이었다고 한다. 오래전에는 대승불교과 소승불교가 함께 있었는데 대승불교는 권력 다툼에서 밀려났나보다.



















이수루무니야 사원은 스리랑카 최초의 불교 사원이다. 이 사원이 생기고 아누라다푸라는 도시로 성장하기 시작했으니 이 도시의 기원 자체가 이 곳인지도 모르겠다. 사원에 나무가 모셔져 있다면 그 나무는 대개 보리수다. 부처가 깨달음을 얻었다는 그 나무 종류 말이다. 사실 스리랑카에서는 종교적으로 중요한 곳이지만 특별한 것을 보거나 느끼지는 못했다. 어마어마한 크기가 작은 연못도 있고 동굴도 있는 아기자기한 예쁜 사원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작은 박물관이 있는데 러버라는 조각상이 있고 좁은 틈에 박쥐떼도 있다.



























숙소에서 지도를 받아왔는데 뭐가 뭔지 잘 모르고 그냥 열심히 다녔다. 길치인가보다. 때양볕에 걷는 건 생각보다 더 지치는 일이다. 지도를 볼 줄 모르는 난 걷는 건 잘 해서 또 어딘가에 도착했다. 근데... 여긴 어디지?! 난 흰탑을 보면서 Sri mahabodhiya로 걸었는데 사원의 가운데에는 나무가 모셔져 있었다. 그래서 난 생각했지 샤머니즘 같은 건가?! 라고. 그리고 저녁에 지도와 사진을 정리하면서 문득 깨달았다. Bo tree다!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바로 그 보리수. 그래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하고 있었던 거였다. 다음날 아침에 또 헤메다가 다른 출입구를 보고는 여긴 어디지 하고 들어가서 2번 갔다. 알고 보니 달리 보이는 간사한 마음이란... 근데 한참을 머물렀던 건 이게 보제수인지 몰랐던 어제였다. 얼마나 사람들이 열심히 기도하는지 나무 근처에서 한참을 앉아서 구경했었다. 이 보리수(보제수 - 보리수라 불리는 나무가 여럿이므로 이를 구분하기 위해서 보제수 혹은 인도보리수라고 부른다.)는 기원전 245년 인도의 부다가야에서 옮겨온 것으로,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바로 그 나무다. 그럼 인도에는 부처가 깨달음을 얻었다는 보제수가 없는 걸까? 인도의 부다가야에 있는 것은 1885년 쿠닝검이 옛 위치를 찾아서 심은 것이라고 하니... 부처가 깨달음을 얻은 나무라면 그 나무 아래서 명상을 통해 열반에 오르기 위해 노력해야하는 거 아닐까?! 이게 중생과 부처의 차이인가? 사람들은 어렵게 깨달음을 얻기보다는 기도를 통해 쉽게 지금의 고통을 덜고자한다. 그래서 그렇게 지천에서 복권을 팔고 있는지도 모른다.





















앙코르와트를 떠올리게 하는 오래된 담벼락을 짓누르고 올라가는 나무다.

돌담이 엉성해서 오래된 거라고 생각 못했는데 이 나무를 보니 아닌가보다.







담 넘어에 뭐가 있길래 다 그러고 있니?





뭔가 굉장히 중요한 내용이 적혀있을 것 같은 비석들이 나란히 있었다.






둥글둥글한 스리랑카 글씨가 재밌다. 그리고 이런 형식으로 쓰여있는 것을 다른 나라에서도 본 기억이 났다. 이건 기부자 명부 인 것 같다. 오른쪽에 쓰여있는 숫자가 기부금이겠지. 사원을 건립할 때 기부금을 쓴 사람들의 명단인 것 같은데 무슨 유적처럼 되어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커미션을 바라는 뚝뚝기사가 실어다주는데로 잡은 방이다. 글의 처음에 언급했듯이 너무 지쳐 있었기에 싸고 괜찮은 곳을 찾고 하는 의지가 없었다. 에어콘방인데 에어콘 안쓰기로 하고 3000루피를 2500루피에 쓰기로 했다. 와이파이가 가능하다. 이름이 프렌치 가든 인이였나 그렇다. 가든 있고 깔끔하고 위치도 괜찮다. 가격 빼고는 만족스러운 곳이었다. 아침 6시 나가려고 보니가 담이 둘러쌓여있는데 문은 쇠사슬로 묶여 있었다. 열어달라고 해야한다. 안전하기 되게 안전하것이다. 그리고 바로 옆에 무슨 건물인지 모르겠는데 밤에 가보면 넓은 정원 가득히 사원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야자열매에 기름을 받아서 불을 붙인 것들이 그게 길을 따라 가득하고 여기저기 놓여있어서 예뻤다.







그의 무단횡단 솜씨는 타의추종의 불허한다. 그는 나무 위에서 동료 둘이 도로를 건너는 것을 지켜봤다. 그렇게 안전을 확인하고 근처에 차가 있는 지 재차 두리번 거리다. 결단이 서면 엄청난 속도로 단 1초만에 도로를 건넌다. 물론 혹시 올 줄 모르는 차를 위해 손 대신 '나 여기 있어요~ 라고' 꼬리를 치켜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