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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메고 떠나다/인디아 여행기

인도 사람들이 사는 프랑스 마을 같은 폰디체리 여행



 폰디체리는 인도 전체가 인도 식민지 하에 놓여있을 때 유일하게 프랑스 식민지였던 곳이다. 중국땅이지만 영국의 식민지였던 홍콩과 포르투칼 식민지였던 마카오 같이 나라 전체와는 다른 분위기가 날 수 밖에 없다. 1674년 프랑인의 손에 들어가서 무역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지금의 휴양과 관광 도시로, 오르빌이 있는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인도같지 않은 분위기가 있다. 깨끗한 거리와 바닷가에 위치한 수 많은 프랑스 분위기의 건물들, 비싼 호텔과 레스토랑. 수많은 건물이 식민지 시대를 증명하고 있는데 비치지역의 몇 개 블록이 이에 속한다. 이를 벗어나면 일반적인 인도의 번잡스러움으로 들어가게 된다. 최근에는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로 알려지기도 했다.





 호텔에서 폰디체리에서 가볼만한 곳을 적은 A4용지 하나를 얻었다. 오르빌(9am ~ 17:30pm), chunnambar boat house(9am ~ 17pm), sri aurobindo ashram(8am ~ 18pm), 폰디체리 박물관(10am ~ 17pm),  sri manakula vinayagar temple(5:30am~ 21:30pm), 그외 유명한 다수의 교회들(5:30am ~ 19:30pm). 간단한 설명과 운영되는 시간은 적혀있는데 위치를 모르겠다.






 가이드북도 가이드도 없어 의미를 알 수 없었던 동상들. 뭐... 알려고 한발짝 더 다가서면 알 수도 있었겠지만. 






 뜨거운 폰디체리의 햇살을 피해 그늘에서 낮잠을 자고 있던 쌍둥이(?) 개와 예쁜 폰디체리의 골목에서 촬영을 하고 있던 사람들.





이곳도 인도인지라 집을 오가는 사람들의 행운을 책임지는 안주인이 존재하고.




 사원 앞에 있던 코끼리아저씨는 돈도 받고 먹을 걸 받기도 한다. 물론 코끼리아저씨는 코가 손이니까 코로. 그리고 그걸 준 사람의 머리를 톡톡 친다. 물론 코로. 그럼 그 사람은 머리를 숙이고 두 손을 모은다. 당신에게 행운을 드리겠어요. 인도 사람이라고 모두 코끼리에 익숙한 것은 아닌지 코끼리 옆에 서서 기념사진을 찍는 청년은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ㅎ 





 당연하게도 폰디체리에 있는 모든 사람이 부유한 것은 아니다.





소년은 여행 온 이들에게 솜사탕 봉지를 팔고

무슬림 아저씨는 양쪽에 두 부인을 끼고도 한 눈을 판다.





 천사의 노트르담 성당과 간디상.




 폰디체리 비치 주변의 예쁜 집들 말고 유명한 것이 오르빌. 걸어갈 수 있는 거리는 아니다. 버스를 타고 오르빌가요! 라고 해서 내리면 거기서부터 8km 떨어져있다. 물론 버스를 내린 그곳에 오토릭샤들이 줄서있어서 쉽게 갈 수도 있다. 올라가는 길에 장기체류시 할인해준다는 게스트하우스들이 여럿보인다. 오토바이를 타고 내려오는 금발의 외국인들도 여럿보이고. 미쳐 날뛰던 소!!! 가네샤를 실고 가던 트럭에서 타악기를 연주하자 그에 맞춰서 차 뒤를 바짝 뒤쫓아 질주했다. 주위를 걷던, 혹은 오토바이와 자전거를 타던 모든 사람들이 소를 피해야했다. 뭐가 그리 신난 걸까? 무엇이 우리의 난디군을 흥분하게 했는가!!! 40분후에 왔던 길을 혼자서 씩씩하게 돌아걸어오는 이녀석을 다시봤다. 전혀 지친기색없이 껑충껑충 걷고 있었다.





 오르빌을 향하며 이런저런 생각하다가 가서 뭐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르빌은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체류하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는 곳이다. 그래서 결국은 오르빌을 코 앞에 두고 발길을 돌렸다. 오르빌까지 들어갔다가 나오면 왠지 더 쓸쓸할 것 같았다. 이건 영어의 문제가 아니라 성격의 문제. 그래서 더 심각하다.

 오르빌은 결국 다시 시작하기 위함이 아닐까?! 그리고 다시 똑같아 지겠지. 그럼 또 다시 시작하기 위한 다른 이름을 가진 또 다른 마을이 만들어지겠지. 오르빌에 가서 출입증을 만들고 비디오를 보고 마을을 한바퀴 돈다고 뭔가 느낄 것 같지 않다. 그래서 발길을 돌렸다. 그곳에 살지 않는 이상 이건 아무 소용 없을 것 같다. 이상을 품을 수 있겠지만 그건 정말 꿈일 뿐이다. 현실을 더 잘 보지 못 할 수 있잖아. 스쳐지나가는 것과 사는 건 다르니까. 사회주의가 생각과 달리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어주지 못했던 것처럼 사람은 그리 이성적이고 이타적이지 않다. 세상의 문제에서 벗어나 새로운 마을에서 새롭게 시작했지만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고 그들이 생각하는 이상을 향한 정도(!)라는 것이 제각각 일 수 밖에 없지 않은가. '친환경적이다'라는 것을 실천 할 때 어떤 이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에어콘보다는 선풍기를 사용하자고 할 수 있지만 또 다른 이는 자전거를 사용하고 자연풍을 이용하고 추우면 추운데로 더운면 더운데로 살아가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많은 사람이 모일 수록 그 접점을 찾는 것은 어려워질 것이다. 그리고 사람은 누구나 조금 더 편리한 것을 추구하게 되는 이기적인 존재이지 않나? 사랑과 함께 미움도 그들 사이에 움틀테고. 폐쇄적인 마을이 되지 않기 위한 장치들이 일반사회와 구별이 모호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그러면 또 다른 마을이 만들어질 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모인다. 산으로 바다로 혼자 오두막을 짓고 살아가지 않는다. 사람은 참 변하지 않아서 10년전 사회성 5%의 인간은 여전히 인간사회에서의 5% 관계능력을 가지고 있나보다. 그래서 생각만으로는 멋지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그 사회에 들어가서 살 수는 없다고 생각된다. 산 속에 오두막을 짓고 10년을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은 하면서도 말이다. 나란 인간... 참. 다시 비치로 돌아와 보게 되는 식민지시대의 잔재들은 왜 이렇게 모나고 장난감처럼 보이는지. 그새 이런저런생각을 했더니 마음이 삐뚤어졌다. 삐뚤어질테다.





 오르빌로 올라가던 길에 티벳음식점이 보였는데 골목으로 들어서니 문이 굳게 닫혀있었다. 담백하고 맛있는 티벳 음식이 절실히 당기는 시기였다. 해먹을 만들어 파는 이들도 많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집에 이 해먹을 걸 수 있는 사람을 별로 없겠지? 그래도 캠핑이 빵하고 떴으니 캠핑족에서 팔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100% 핸드메이드 해먹을 인도에서 잔뜩 사오면 잘 팔릴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