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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산호의 장사 상륙 작전

문산호의 장사상륙작전

 

 이름없는 학도병들이 한국전쟁을 승리로 이끌다

 

 

 문산호가 장사상륙작전을 감행한 것은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을 위한 양동작전의 일환이였습니다. 문산호에 탑승한 전투대원 772입니다. 장사상륙작전이 이루어지면서 700명이상이 사망하였습니다. 3년의 한국전쟁 기간동안 우리 군인들의 모든 전투가 소중했지만 문산호의 장사상륙작전이 없었다면 한국 전쟁은 우리의 패배로 귀결되었을 지도 모릅니다. 인천상륙작전의 성공 뒤에는 이 전투가 있었고, 인천상륙작전이 실패로 돌아갔을 때 연합군은 철수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천상륙작전이 수행되기 하루 전인 1950년 9월 14일 새벽 5시경, 북한으로 하여금 우리군이 동해로 침투할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 짧은 군사훈련만 마친 학도병들이 경상북도 영덕군 장사리에 상륙합니다. 2700톤의 LST 문산호는 장사리 해안에서 높은 파도 때문에 좌초되고 북한군의 총탄이 달아드는 가운데 10시간 후인 오후 3시경 상륙에 성공합니다. 전투 경험은 커녕 총 쏘는 법만 겨우 배우고 전쟁터로 나온 어린 학생들은 6일간의 전투로 장사리 인근에 있는 북한군을 괴멸시키고 7번 국도를 봉쇄하고 북한군 보급로를 차단시키는데까지 성공합니다. 게다가 적의 주력부대를 동해안으로 유인하여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이처럼 한국전쟁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장사상륙작전은 마치 잊혀진 듯 했습니다. 학도병들은 군번도 없고 임시 계급장을 달고 있었기 때문에 정부로부터 제대로 된 평가와 보상을 받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던 것이 90년부터 이 전투의 생존자들이 죽어간 전우들의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해 나섰고 조명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위령제도 지내고 있고 전승기념공원도 조성되고 있습니다. 해병대 대원들이 1997년 3월 6일 장사리 앞 해안을 수핵하다가 갯벌 속에 좌초된 문산호를 발견된 것도 이 전투를 기릴 수 있게 된 결정적인 사건 중 하나였습니다.

 

 

 

 문산호의 죽은 혼령들이 나타난다?

  

장사해수욕장 부근은 장사상륙작전으로 아군과 적군 수백명이 사망한 곳입니다. 그래서 이곳에 지어진 집 중에 귀신이 나타난다는 집이 있습니다. 영덕 장사흉가로 불리는 이 곳은 영덕 장사흉가는 우리나라 3대 흉가 중 하나입니다. TV에도 여러번 나왔습니다. 이곳에서 밤을 보내면 음산하고 슬픈 소리가 들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과거에 이곳에 있던 가게들은 모두 망해서 나가고 흉가가 되었다고 하네요. 지금은 귀신이 나온다는 곳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에 의해 관광지화(?) 되어가는 듯 합니다.

  

 이제 전사한 학도병들을 위한 위령제도 올리고 전승기념공원도 세워져 제대로 된 평가를 받으면 그들은 이제 더 이상 슬퍼하지 않고 하늘로 갈 수 있을까요? 전쟁 없는 저승에서 안식을 찾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