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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를 바라보다

[연극] 토란·극 土乱 극 - 수 많은 이미지 만들기가 시도 되었지만...

토란극

 공감되지 않는 수 많은 이미지 만들기

 

<토란·극>은 쉽지 않다. 만약 내가 근래에 가볍고 웃긴 극들만 보아왔다면 이 공연에 대해 좋은 평가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우연히도 최근에 움직임과 상징이 좋은 극들은 몇 개 보아왔기 때문에  <토란·극>이 가지는 진중함은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못했다. 공연 첫날여서 일까? 실수도 잦았다. 동선에 문제가 있어서 부딪히거나 촛불을 떨어뜨리고 꺼뜨리는 일, 앞 배우의 대사가 끝나지 않았는데 대사를 먼저 넣었다가 빼는 일등이 있었다.  무엇보다 <토란·극>은 연극실험실 혜화동 1번지에 공연되어 질만한 공연이었다. 하지만 멋지지 않았다. 배우들의 움직임과 동선 대사들을 머리속으로만 생각하고 이미지화 했을 때는 멋진 장면들이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이미지들이 무대위에 구현되면서 뭘 하자는 건지 모르게 되어버렸다. 물론 이건 개인적인 의견이다. 하지만 나와 함께 공연을 봤던 다수의 사람들이 느꼈던 감정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공연장을 나와  골목을 내려가는 길에 앞에 걸어가는 연인이 하는 말을 들었다. '징하다' '졸려서 미치는 줄 알았다'. 사실 나도 공감한다.  솔직히 공연 전부터 좀 졸리긴 했다. 그게 문제였는지도 모른다. 극은 끝날 듯 끝나지 않고 계속되어서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토란·극>의 무대는 텅 비어있다. 까만 무대의 뒤에 까만 비닐(?)이 씌어져 있어 배우들의 모습을 왜곡되게 비추어주고 있다.  조금 더 까맣고 깔끔했으면 예뻤을 것 같지만 이건 극장이 열악한 것이 문제이기도 하다. 극이 시작되고 조명이 최소한으로 쓰여진다. 저 멀리 서 있는 빌딩에서 비치는 빛을 현실적으로 사용하길 원해서 였을까? 배우의 얼굴도 명확히 볼 수 없는... 그저 놓여져 있는 빛이다.  아마도 <토란·극>의 최대 장점은 관객이 이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걸까를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는 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고라니의 죽음, 셋째의 죽음, 아버지의 죽음이 이어져 드러나면서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일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곧 상황은 어린시절에서 가족의 사건들을 드러낸다. 한 가족에 대한 이야기인가라고 생각하게되는데 그 가족이 보여주고자 하는 바에 대한 생각을 끝을 보이지 않는다.

 

 

 봉과 선으로 이어진 그네, 나무판자, 촛불, 세숫대야를 이용한 움직임들이 보여진다. 어느 순간에 쉬지 않고 무대를 휘젓는 배우들을 볼 수 있고 또 어느 때는 모두가 멈춰있는 장면을 볼 수 있다. 그들의 움직임이 유려하고 멋스럽지 않은 것은 무대가 좁아서 일까? 아니면 연출의 문제일까? 얼굴이 칠해진 흰 가루는 검은 무대에 바닥에 흔적을 남긴다. 어느 순간 저것이 극에서 등장하는 죽음의 뼈가루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문득들었다.

 개인적으로 이런 실험극을 좋아하지만 멋스러워한다는 단서가 있어야 한다. 왠지 극을 보면서 조급증이 밀려온 것은 의무적이 이미지, 장면 보여주기가 가져오는 불편함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