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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를 바라보다

[음악극] 도시녀의 칠거지악 - 소리와 몸짓으로 만들어가는 멋진 이미지의 향연

도시녀의 칠거지악

 소리와 몸짓으로 만들어가는 멋진 이미지의 향연

 

연극 <도시녀의 칠거지악>의 장르를 生음악극이라고 한 이유는 포스터에 쓰여있는 것을 옮겨온 것이다. 이전 공연에 사용되었던 것은 Musical drama다. 음.. 배우들이 노래를 부르던가? <도시녀의 칠거지악>이 스스로 음악을 강조하는 것은 극이 진행되는 내내 연주를 하고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배우들이 노래를 부르는 것은 아니다. 물론 연주와 노래는 훌륭해서 공연자들이 자부할 만 했기에 그들은 음악을 강조한다. 하지만 <도시녀의 칠거지악>은 내세울만 것들이 많다. 공연을 보러가기 전에는 가벼운 연극일까봐 두려움을 가졌다. 어설픈 희곡에 공감을 강요하는 연극일까봐 걱정되었다. 그냥 제목과 포스터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그랬다. 하지만 공연은 매우 훌륭했다. 아니... 마지막 파트만 없었다면 극 전체가 독특한 색깔을 가진 연극으로 그로테스크하기 보다는 팔리는 이미지들의 멋진 향연이었기에 와~하고 신음하기도 했다. 그래서 더욱 아쉬운 것이 칠거지악의 마지막이자 가장 긴 시간 이야기된 Back To The Past 부분이었다. 이 장면은 보통은 연극을 보여준다. 이 장면이 형편없다거나 이상하다는 것이 아니다. 단지 이 극 전체가 처음부터 이제껏 보여왔던 독특함을 마지막에서 무더뜨리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는 것이다. 지금껏 보여주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보여주었다면 공연이 끝나고 나는 벌떡 일어나 박수를 쳤을지도 모른다.  

 

극에는 세명의 안나가 등장한다. 조안나, 이안나, 백안나. 그리고 그녀들은 일곱가지의 옴니버스 이야기를 들려준다. 인상적인 것은 그들의 이야기보다 그 이야기를 보여주는 방식이다. (사실 이야기야 태양아래 새로울 것이 있을까 수만년동안 이야기는 지어져왔고 우리는 그것을 답습할 뿐이다. 그저 새로운 방식의 보여주기가 남아있을 뿐이다.) 배우들의 움직임과 소리가 끊임없이 관객들의 동공을 확대시키고 즐겁게 한다.  

 

   자만심

발레를 배우기 시작한 서른셋의 백안나는 동창회에 간다. 현실적이면서도 보편적이라고 할만한 친구들 사이에서 안나는 눈에 띄는 존재다. 친구들의 과장된 몸짓과 소리냄이 재밌다. 서른이 넘어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상을 쫓는 것은 자만일까? 굉장한 능력을 가지지 않고 이상을 쫓기만 하는 것을 두고 자만이라고 부를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상을 실현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그저 그것을 쫓으면서 소시민적으로 살아가겠다는 것이다. 그저 그것에 만.족.하겠다고. 그러니 비교하지 말아라. 당신들의 경쟁상대가 줄어드는 것이니 좋아해야 할 일이 아닌가. 안나를 보고 우월감을 느끼는가? 근데... 정말 당신은 그렇게 살아서 행복한가?

 

 1%의 희망 

아... 이 장면에서 가장 인상깊은 것은 쪽.쪽.쪽이다. 쪽쪽쪽쪽쪽쪽쪽쪽쪽쪽쪽쪽쪽.....  세 쌍의 커플이 다양한 포즈와 움직임으로 강렬한 소리를 끊임없이 내고 우리의 조안나는 작업남과 엮어져간다. 진짜 사랑해 볼래? 상처받지 않으려면 사랑하지 않으면 된다. 그저 상대는 애인이다. 사랑하는 '님'이 아니다.

 

 

동일시 파트가 없다. 동일시라고 쓰이고 보여지는 장면은 노트북을 열고 타자를 치는 1분도 안되는 시간... 이 장면이 생략된 것일까? 뭐지?

 

 무감각

모든 것에 무감각해져 오는 시기가 있다. 그리고 그 무감각을 벗어나지 못하면... 끝장이다. 모든 감정이 무디어지면 그때부터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인생의 재미가 없어진다. 이 무감각을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장면으로 극명하게 보여준다.

 

  죄악감

이안나의 죄악감은 낙태에 관한 이야기다. 이 파트가 특히 이미지 구현이 뛰어난데... 뭐랄까 정말 예뻐서 슬프다는 말이 어울리는 장면들이 이어진다. 우선 이야기를 지배하고 있는 감정은 슬픔이다. 하지만 보여지는 이미지들은 강렬하지만 예쁘다. 그래서 슬픔은 더 커진다. 불러온 뱃속을 터뜨리는 장면, 풍선머리와 종이몸의 아이와 함께 춤을 추는 장면, 아이의 머리 위로 쏟아지는 흰종이들, 풍선을 단 체 움직이는 일련의 사람들,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

 

 운명론 

'죄악감'에서 절정에 달했던 이미지 구현이 조금씩 시들애져 가는 부분이다. 뒷쪽에 높게 서 있던 물통처럼 보였던 곳의 옥상에서 점집이 드러난다. 하지만 지금껏 보여준 이미지들도 있고해서 점집이 가질 수 있는 무수한 이미지의 향연이 예상되지만 이미지를 보여주시보다는 조용히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전환한다. 안나는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안정적으로 사회에 편입되기 보다는 발레를 하고 세계여행을 하길 원한다. 무엇이 나은 삶이라고 할 수는 없다. 안나도 1,2년이 흐른 후 과거의 선택을 후회할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지금 결혼하면 백퍼센트 작으면 아쉬움이고 크면 후회한다는 것이다. 인생은 수 많은 선택의 연속이다. 그저 매 순간 나를 가장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선택을 하면 될 뿐이다. 

 

 Back to the past 

 이 파트에 대한 이야기는 초반에 이미 했지만 내용적이 것은 하지 않았으니 잠깐 언급. 애초에 안나는 시골에 내려갈 생각을 하지 않았는 지도 모르겠다. 인간의 행동은 심리를 반영한다. 안타깝게 놓치는 것 같던 기차도 세번씩이나 반복되면 그것은 그들의 심리가 투영 된 것이지 정말 실수로 기차를 놓친것이 아니다. 금성에서 온 여자와 화성에서 온 남자가 기억하는 과거는 너무나 다르다.  

 

김밥집 vs 여관

묘했지 vs 좋았지

유치했지 vs 순수했지

갔었어 vs 기다렸어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개인적으로 매우 좋았다. 극장이 원더스페이스여서 더 좋았을 수도 있다. 높은 천장과 경사가 심한 관객석 덕에 시야장애가 전혀없었다. 요즘은 흔히 볼 수 있는 콘크리트 노출 건물디자인을 보이는 바닥은 가로 세로 5칸씩 스물다섯칸을 가지고 있다. 한 칸은 조금 쏟아 있고 뒤에 있는 두칸은 많이 쏟아 있으면 중간에 떨어져 가며 세 칸의 바닥이 들리고 물과 풀, 자갈이 놓여져 있다. 왼쪽 뒤에는 물탱크같은 것이 보이는데 극의 제목과 각 파트의 제목이 쓰여진다. 극이 시작되고 무대가 온전히 보여지기 시작할 때부터 이미 분위기는 잡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