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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를 바라보다

[연극] 애국자들의 수요모임 - 애국자(?)들은 왜 모였나?!


  연극 애국자들의 수요모임은 연극 <미친거래>때 처음 공연을 보고 다음에 꼭 다시 공연 보러가야지 다짐했던 아리랑아트홀에서 이루어지는 공연이었다. 애국자들의 수요모임은 독특한 공연장의 매력을 더욱 크게 발산시켰다. 본래 극장이 가지고 있는 화강암(?) 기둥을 그대로 노출시켜서 만들어져서 인상적이었다. 하나 더 인상적인 것은 실시간으로 촬영을 하고 그것을 커다란 액자 모양을 한 스크린으로 연극이 공연되는 내내 보여진다는 것이다. 그 동안 무대 위에 있는 많은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보아왔지만 그것들은 대개 이미 촬영을 해 놓은 것을 플레이하거나 극이 이루어지는 동안 배경같은 역할을 하기 위해 무언가 투사되는 공간이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극의 시작과 함께 시작되는 촬영과 그 카메라가 담는 극의 모습이 어떨지 궁금했지만... 극이 진행되면서 솔직히 왜 이런 방식을 선택했는 지 이해할 수 없었다. 텔레비전과 다를 바 없는 그것이 존재해야 하는 당위성을 찾기 어려웠다. 사실 연극이라는 것은 텔레비전처럼 채널을 바꿀 수도 중간에 그만 볼 수도 없다. 하지만 시점만큼은 내 마음대로 가져갈 수 있다. 대사를 하고 있는 배우에게 포커스를 맞출 수도 있지만 그 대사를 듣고 있는 배우에게 맞출 수도 있다. 그건 관객의 자유다. 더 극단적이게는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맘에 드는 배우나 소품을 바라볼 수도 있다. 하지만 텔레비전은 철저히 프레임을 만드는 사람의 시선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프레임을 벗어난 공간 따위 절대 볼 수 없다. 그런데 극에서 카메라가 잡는 영상이라는 것이 그저 대사를 하는 배우를 따라가거나 너무나 뻔한 모습만을 보여주며 미처 관객이 놓칠만한 것을 보여주지도 못하기 모니터를 바라보는 것은 극을 감상하는데 방해만 될 뿐이다.

 

 

이야기는 부조리한 사회지도층에 대한 이야기가 될 수 있고, 그것을 꿈꾸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부쩍 경제적 평등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 시점이어서 시대상으로는 적절하였지만 개인적으로는 최근에 워낙 그런 내용의 책과 영화를 많이 봐서 식상한 느낌을 버릴 수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눈에 띄는 것은 아무래도 늙은 도둑이다. 그가 아무리 정의롭고자 해도 그의 행실 또한 가진자의 행태와 다를 바 없게 비춰진다. 기회만 있었다면 그들의 카드놀이에 한 자리 차지 했을 인물이다. 그는 그들에게 분노할 자격이 없다. 그의 모습은 관객을 부끄럽게 한다. 그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다. 우리는 부도덕한 사회지도층을 비판한다. 암암리에 이루어지는 부정부패에 대해서도 많은 귀동냥으로 알고 있지만 섣불리 나서지도 않고 은근한 선망의 대상으로 삼는다. 교육은 그들을 롤모델로 이루어진다.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어 내가 이 사회를 움직이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그들처럼 될 수 있다면 나머지 것들은 쉽게 버릴 수 있는 사람. 그러면서도 나는 그들과 다르다고 외치고 있다. 그들과 우리는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끊임없이 부조리한 일들과 사람들에 대한 욕설을 내뱉어야 한다. 그것이 진심에서 나오든 질투에서 나오든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