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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메고 떠나다/캄보디아 여행

프놈펜 왕궁 - 독재자에의해 국왕이 갇혀있는 궁

프놈펜 왕궁

 

 독재자에의해 국왕이 갇혀있는 프놈펜 왕궁

 

 왕궁에 들어선다. 입장료가 6달러가 넘는다. 반바지를 입지 않을 것을 권고하지만 반바지 입었다고 못 들어가는 건 아니다.

근데 이점을 이용해서 이걸 해결해주고 가이드를 자청하면서 돈을 받으려는 사람들도 있으니 주의해야한다. 음... 가이드가 있으면 좋긴하지만.

 

 

 왕실 내부에 사진 촬영을 금지하는 곳이 많았는데 그런 곳들이 특히 화려하고 멋졌다. 꽤 세련되었다는 인상을 받을 정도였다.

왕궁 출입구에서 좀 더 북 똑으로 올라가면 왕궁 앞쪽에 공원이 있다. 그곳에도 어김없이 이 중년의 여성분 사진이 걸려있다. 도시 곳곳에 걸려있는 걸로 봐서는 영국의 빅토리아 정도의 왕실 사람인가보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여왕은 없고 왕이 있다고 하니.

 

 

 사실 개인적으로 왕국은 좀 지겨운데가 있어서 선호하지 않는다.

그래서 태국의 왕국은 7년전에 갔었으니 안가기로 하고 왕이 살고 있다는 캄보디아 왕국엔 들르자고 생각해서 들어간 건데...

특별한 건 없었다. 태국 스타일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캄보디아 왕에 대한 기사가 있었는데 그 내용이 굉장히 흥미롭다.

이 기사를 먼저 읽고 프놈펜 왕궁에 갔다면 더 관심을 가지고 보았을 것 같다.

 

출처 : 프놈펜 AP=연합뉴스

 

 해가 지고 마지막 남은 관광객들마저 떠나면 노로돔 시아모니 캄보디아 국왕은 동화 속에서 나올 것 같은 왕궁에서 쓸쓸히 혼자가 된다. 이 시간의 그에게 남은 것은 마지못해 왕이 되기 전에 보냈던 행복한 시절에 대한 기억이 거의 전부일 것이다. 그는 2천년에 달하는 캄보디아 왕실의 마지막 계승자가 될지 모른다. 발레 무용수였던 그에게는 거칠고 험난한 조국의 정치 무대보다 유럽의 예술 무대가 더 적합했을 것이다. 그의 측근들과 전문가들은 그가 자신의 왕궁에 죄수처럼 유폐돼 있다고 비유한다. 그를 가둔 두목은 가난한 농촌에서 태어나 명민하고 술수에 능하며 무자비한 정치인으로 성장한 훈센 총리라고 할 수 있다.

 

1997년 쿠데타로 집권한 훈센은 명목상 민주국가인 이 나라에서 모든 통치 기구를 동원해 비판세력을 가두고 그의 재선이 당연한 것으로 되는 상황을 만들어 버렸다. 훈센 총리의 권력은 왕궁에도 뻗쳐 있다. 왕은 정부가 파견한 감시인들에 둘러싸여 있으며 훈센의 측근인 콩솜올 왕실담당장관이 이들을 총괄 지휘한다. 왕은 왕궁 담 밖으로 거의 나가지 못하며 어쩌다 나갈 경우에도 감시인들이 반드시 동반하는 반면 언론의 접근은 차단된다. 캄보디아 헌법은 왕에게 상당한 권한을 부여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이 권한이 전혀 주어지지 않고 있다. 야당의원으로 캄보디아에서 정부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몇 안 되는 사람 중의 하나인 손치헤이는 "'허수아비 왕'이라는 말을 쓸 수 있을 것"이라면서 "왕의 권한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캄보디아에서 왕의 위상이 언제나 이랬던 것은 아니다. 시아모니 국왕의 부왕인 노로돔 시아누크 전 국왕은 수십년 동안 이 나라에서 거인처럼 군림했다. 많은 사람이 그를 신과 같은 존재로 생각했고 그의 생일 같은 특별한 날이면 불꽃놀이 행사를 보기 위해 수만명이 왕궁 앞 광장에 몰려들곤 했다. 이랬던 시아누크 전 국왕은 2004년 훈센과 충돌한 후 퇴위했다. 손치헤이 같은 사람들은 시아모니 국왕이 왕실을 계속 존속시키려는 부모의 뜻에 따라 이때 어쩔 수 없이 왕위를 계승했다고 말한다. 7년이 지난 지금 캄보디아 국민들은 시아모니 국왕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슬프고 외로우며, 버림받았다" 같은 말로 왕에 대한 측은한 감정을 내비친다. 시아모니 국왕은 58세로 매일 매일을 서류를 결재하고 손님들을 접견하는 일상적 업무로 보내고 있다. 그런 다음 식사하고 책을 읽는 것이 생활의 거의 전부라고 시아누크 전 국왕의 비서이자 시아모니 국왕의 자문관인 시소와트 토미코 공은 전했다. 6명의 부인과 수많은 정부를 뒀던 부친과 달리 시아모니 국왕은 평생 독신으로 살았고 왕위 계승자를 남길 것 같지도 않다. 최근에 있었던 그의 생일은 거의 누구도 모른 채 조용히 지나갔으며 궁 안에서조차 특별한 행사가 없었다. 궁에 있는 젊은 시종인 신치헤이는 "왕이 선량하고 점잖으며 캄보디아의 상징이지만 단 하나 문제가 있는데 권력이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훈센이 캄보디아의 실질적 왕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키우 카나리트 공보장관은 왕이 사회 종교행사와 사법심사에도 관여하며 훈센 총리에게 매달 보고를 받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왕을 왕국에 갇힌 죄수라고 말하는 것은 부적절할 것"이라고 역설했다.시아모니 국왕은 발레무용수와 문화대사로 체코슬로바키아와 프랑스에서 25년을 지냈다. 지금도 체코를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그는 체코를 "제2의 조국"이라고 부르며 "체코에서 보낸 시절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라고 말한다. 체코 말을 능숙하게 구사하는 왕이 손님들과 현지어로 대화를 나눌 때면 이를 엿들으려는 주변 수행원들은 짜증을 낼 정도라고 한다. 

 

 

 크메르 왕국일 때 프놈펜이 수도였다가 250년정도 캄보디아의 우동이 수도였던 적이 있었다.

그 후 프놈펜이 수도가 되면서 노로돔 왕이 1866년 지은 궁전이 프놈펜 왕궁이다.

프놈펜 왕궁에는 프랑스의 식민지 시절에 지어진 프랑스식 건물이 있다. 프랑스에서 재료를 모두 가져와서 지어졌다고 한다.

스리랑카에서 가져온 에멜랄드 불상과 벽화, 황금탑, 실버탑 등이 있다.

 

 

 

궁의 가장 높은 곳에 안테나처럼 긴 첨탑에 보이는 머리...들.

사방으로 머리를 가지고 있다. 내가 너희를 모두 살펴보고 있다는 의미겠지?

 

 

 

정원이 굉장히 잘 가꾸어져 있다.

 

 

 

 

 가이드가 있다면 이 벽화에 그려진 이야기를 해줄텐데... 가이드북도 없으니 쩝.

서치해보니 캄보디아의 설화같은 내용이다. 왕자가 부인을 이웃 나라의 왕에게 빼앗기게 된다.

벽화에서 보이는 원숭이들이 왕자의 원숭이 군단입니다. 왕편 ㅋ

결국 왕자는 전쟁에서 승리해서 부인을 찾아오게 된다.

그런데.... 인생이라는 것이 우습게도 뜻밖의 일이 일어난다. 왕자의 부인이 이웃 나라의 왕에게 사랑을 느낀 것이다.

그녀의 사랑은 더 이상 왕자를 향하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전쟁은 왜 했니.. ㅠㅠ

 

 

 비슷한 사진을 계속 찍는 것보다 그걸 찍는 사람들을 찍기로 했다.

나도 DSLR 사고 싶다. =ㅁ=

 

 

  

 

 

 

 앙코르 왕궁의 최전성기를 만들어냈던 자야바르만 7세를 기리는 석상이다.

12세기에 자야바르만 7세는 베트남의 침공을 물리치고 베트남을 먹었다. >0<

그리고 지금의 캄보디아 수입의 거의 다수를 차지하는 앙코르톰을 재건했다.

그러니 과거의 영광은 물론 지금의 캄보디아 후손들까지 먹여 살리게 만든 인물인 거지.

 

 

 

 부처상이 참 좋다. 강단(?) 있어 보인달까? 나무들 사이에 앉아있는 부처상 위에 새가 앉아있네.

사리(?)를 입고 있어서 더 신비로운 느낌이랄까.

 

 

 

 프놈펜 왕궁의 실버탑에 오르는 정갈한 할머니.

 

 

 

 부처의 미소가 좋다.

 

 

 

 나무의 줄기를 붙인건지 아니면 정말 이렇게 희안한 건지 모르겠다. 접합부분을 보면 붙인 거 같이 보이지는 않는다.

 

 

 

 이 지도를 보면 크메르 전통 약식으로 지어졌다는 프놈펜 왕궁과 태국 방콕의 왕궁이 비슷하게 생긴지 알 수 있다.

태국 땅 전체가 크메르 왕국의 것이었다. =ㅁ= 그들은 결국 한 핏줄인 거지.

근데 베트남 사람은 바로 옆 나라인데도 다르게 생겼다. 미얀마도 그렇고.

물론 캄보디아 사람들 중에서 유난히 앙코르와트의 유적 벽화에서 보이는 크메르족과 닮은 사람은 많지 않다.

단지 인근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앗, 크메르족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크메르족처럼 생긴 사람들이 종종 보일 뿐이다.

 

 

코끼리 등에 올려놓고 왕들이 앉았다는... 이름이 뭐지? 그것들이 모여있는 전시관이 나가는 길에 따로 있었다.

 

 

 

 국왕의 사진들과 행적들이 담긴 사진과 이야기, 왕가에서 쓰이는 물건들이 있는 전시관을 마지막으로 프놈펜 왕궁을 나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