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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를 바라보다

[연극]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

 

  손숙과 박완서가 만들어낸 모노드라마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던걸까?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은 박완서의 단편소설을 손숙의 연기로 무대에 올린 작품이다. 박완서의 사후 1주기를 추모하는 연극으로 무대에 올려지는 것이기도 하다.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은 모노드라마다.  모노드라마는 아무래도 장점보다는 단점이 많지 않을까? 단 한명의 배우이지만 그들이 무대 위에서 보여주는 역할은 하나가 아니다. 다양한 인물 연기를 한다. 그래서 모노드라마는 할머니가 해는 전래동화 같은 느낌이 든다. 배우의 연기력에 극 전체가 온전히 달려있는 것이다. 물론 연극이기에 연극적인 장면을 만들어내서 단점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배우의 슬픈 멜로 드라마 맥베스(리뷰보기), 염쟁이 유씨(리뷰보기), 벽속의 요정(리뷰보기)이 그 동안 본 모노드라마다. 맥베스는 배우의 워낙 캐릭터가 강했고 땀을 흘려가면서 역동적인 모습을 보이며 무대를 장악하는 모습에 기립박수라도 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염쟁이 유씨는 관객과의 소통을 통해서 유쾌하게 극이 전개되어 갔다. 아들이 먼저 죽고 남은 부모의 모노드라마라는 점에서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과 공통점을 가진다. 벽속의 요정은 배우가 수 많은 인물에 해당하는 옷을 갈아입고 성대모사를 하면서 극을 이끌어나간다. 동시에 염쟁이 유씨처럼 객석과의 소통을 이끌어 낸다.

 

 

 이리도 길게 그동안 보았던 모노드라마 연극들에 대해서 나열한 이유는 모노드라마가 가지는 단점 때문에 극을 보기 전에는 염려를 했지만 극이 끝난 후에는 모두 만족을 했다는 점이다. 그에 반해서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은 그리 만족스럽지 않았다. 원작이 수화기를 들고 통화하는 여인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모노드라마로 만들어내기에 굉장히 적합했을 것 같다. 근데 이걸 무대로 옮기면서 원작에 충실하고자 했다는 인터뷰를 보았는데.. 개인적으로 연출이 별로였다. 전화기부수나 배우가 다양한 소품을 뒤에서 하나씩 가져다가 보여주고 다시 가져다 놓고 하는 모습이 이상하게 생경하게 다가왔다. 이미 잘 접혀져있는 옷들을 상자에 이상하게 구겨넣는 것보다는 몇 개는 개어지지 않은 옷을 가지고 접으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나았을 것이고 세트를 돌려 전화 부스를 노출 시켰을 때는 그 장면을 재현하는 것이 전화통화로 이야기하는 것보다 나았을 것 같다. 소품을 이용해 연기하기보다는 보여주고 넣기를 반복하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다가오지 않았다. 빈 집으로 들어와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찾는 것 같은 재연 장면처럼 보여주는 방식을 채택하는 것이 더 연극적이었을 것이다. 중견배우의 호흡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지만 버벅대는 부분과 같은 대사를 반복하는 부분도 있었다. 물론 엄청난 대사를 끊임없이 쏟아낸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임을 안다.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다.

 

 

 

 내용으로 들어가보자면 중산층 가정의 여인이 남편과 아들을 잃고 두 딸과 사는 배경이다. 아들을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쇠파이프에 맞아 죽었다. 먼저 죽은 아들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하며 살아가는 어머니의 마음을 표현해낸다. 오랫동안 슬픔의 감정을 억누르지만 식물인간이 된 친구의 아들을 만난 것을 계기로 슬픔을 표현하게 된다. 줄거리만 보면 울어라울어라 라고 계속 이야기할 것만 연극같지만 슬픔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비교적 담담하게 이어가다가 극의 후반부에는 감정을 폭발시킨다. 음... 써 놓고 보니 극 전반부에 분위기를 조성해 놓고 후반부에 폭풍 눈물 흘리며 관객들을 슬픔으로 공감시키려는... 전형적인 방법이었군. 극장의 에어콘이 추워서 그런지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이 슬퍼서 그런지 여기저기서 콧물 훌적이는 소리가 들린다. 사실 극의 내용과 손숙이라는 배우, 박완서라는 작가의 가치 때문에 뭔가 있는 것 같고 함부로 말할 수 없을 것 같은 분위기가 있는데 솔직히 완성도면에서 별로였다. 기대를 많이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언제나 모노드라마는 내게 놀라움을 주었으니까.

 

  

 

 극장을 나서면서 내게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은 무엇이 될 지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어쩔 수 없는 운명으로 흘러흘러 그리 되는 것 보다는 단 하나 내가 가장 마지막까지 지니고 있을만한 것을 지금부터 소중히 하는 것이 중요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