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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 아시아 리얼리즘 Realism in Asian Art

아시아 리얼리즘

 

 아시아 리얼리즘 그림을 총망라한 멋진 전시회

 

 어김없이 햇살이 강한 날 덕수궁으로 향했다. 아주 오래만에 가보는 덕수궁은 정말 좋았다. 도심 한가운데 전혀 다른 세상이 있는듯 커다란 수목들에 시원했으며 이국적인 건물과 지극히 동양적인 건물이 함께 어우러진 공간이 묘하다. 방학이 끝날 무렵이어서 방학숙제를 하려는 듯 중고등학생들이 많았다.

 

 

 

 

 <아시아 리얼리즘>전은 한국, 중국, 일본,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타이, 베트남, 필리핀, 인도라는 아시아 10개국의 근대 회화 106점을 전시하는 기획전이다. 전시는 크게 5개의 주제로 노동과 전쟁만 하나의 전시실로 묶이고 각각의 전시실로 나누어져  총 4개의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었다. 각각 다른 주제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건 거의 시대의 흐름에 의한 구분으로 보였다. 아시아라는 같은 지역적 동질감을 가지고 리얼리즘이라는 하나의 사조 속에 존재하는 그림들이어서 사뭇 비슷하게 보였지만 많이 달랐다.

 

 새로운 재현 형식으로서의 리얼리즘 Realism as a means of representation 

  

  

        다카하시 유이치 <오이란>                        응우옌기어찌 <베트남 풍경>                       파비안 데 라 로사 <리잘>

 

  제 1 전시실을 들어서면 가장 앞 정면에 놓여있는 그림이 다카하시 유이치의 <오이란>이란 오이란은 일본의 매춘부를 말한다. 그녀의 모습에서 음란함보다는 삶에 지친 근대의 여성이 보인다. 얼마전 읽은 김별아의 <가미가제 독고다이>에 나오는 게이샤가 나이가 들면 저런 모습일 것만 같은 기분이다. <베트남 풍경>은 보드에 옻칠을 한 것인데 가운데 아래 두 사람이 서 있다. 붉은 색과 금색으로 그려진 그림의 색감은 정말 독특한 것 같다. 옻으로 그림을 그릴 생각을 누가 먼저했을까? 본 전시에서 옻칠로 그려진 작품이 몇 작품있는데 모두 베트남 작품이었다. 근대에 베트남에서는 옻칠을 하는 것이 유행했나보다. 근데 응우예기어찌는 과연 리얼리즘 작가일까? 보이는 그대로를 표현하는데 있는 옻은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 든다. <리잘>은 정말 수만번은 본 인물이다. 필리핀 독립투사인 그는 우리에게는 안중근과 같은 인물이지만 그의 필리핀에서의 위치는 세종대왕보다 더 크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가지고 있는 노트 표지도 그다. 문득 전시관의 그림들이 모두 제 각기의 액자를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필리핀에서 보았던 그 액자 그대로다. 모든 작품이 각자의 나라에서 액자째 떼어져 온 것이다.  왠지 더 좋았다.

 

 

                          라덴 살레 <푼착 고개>                                                후안 센손 <라구나 만과 앙고노 마을 풍경>

 

 그림들을 보면서 여행가고 싶다라는 생각을 되내었다. 각 나라의 특징이라고 할만한 것은 중국의 선전용 그림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는 것 같다. We are the Asia~~

  

 

                        아카마츠 린사쿠 <밤기차>                                              오노레 도미에 <삼등 열차>

 

 아카마츠 린사쿠의 <밤기차>는 도메에의 <삼등기차>를 떠올리게 하는 그림이다. <삼등 기차>에 혼돈(?)이 있다면 <밤기차>에는 밤이어서 그런지 차분하고 고단해 보이지만 도깨비 이야기를 주고 받을 것 같은 느낌이다. 그림 스타일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밤기차>는 깔

끔하게 그려졌으니까.

 

  배운성 <가족도>

 

 가족을 그린 그림이 나란히 걸려있었는데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그림은 어디에 있는 지 알 수가 없다. 큐레이터는 각 나라의 가족 그림을 비교해 보면서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싶었을 것 같다. 그 의도에 맞게 확연히 다른 스타일의 그림을 비교할 수 있었다. 근데 배운성의 <가족도> 너무 웃긴다. 엄마를 바라보는 아이를 제외하고는 모두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우리 가족이예요라는 강한 포스를 내뿜는 저 비슷한 모습들이라니... 옆에 걸린 필리핀 작가의 가족도는 필리핀 전통의상을 입은 부모와 아이 둘의 그림으로 어두운 색채로 그려졌다. 그에 비해 배운성의 <가족도>는 엄청난 대가족에 밝다. 외국인들이 이 그림을 보고 마을사람들이 그린 것이 아닌 가족을 그린 것이라고 하면 놀랄 듯. 인도네시아의 가족도는 굉장히 강렬한 채색과 형태를 가지고 있다. 마치 히피같은 가족이 거칠게 표현되어져 있어 왠지 인도네시아보다는 쿠바의 그림이라고 해야 납득 할 정도다. 

         

 

                  라자 라비 바르마 <달빛 속의 여인>                                              참라스 키엣꽁 <나의 학생>

 

 인도과 태국의 여인을 그린 그림은 기법와 모습이 다른데도 불구하고 그녀들은 왠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얼굴표정이 좀 닮았으려나...  

 

 은유와 태도로서의 향토 The Rural as an Attitude and Metaphor

  

 

                       와키디 <미낭카바우 마을>, 인도네시아                                       조셋 첸 <사테 파는 소년>, 싱가포르

  

 

                    쿠오주핑 <휴식>, 말레이시아                                      모하메드 후세인 에나스 <케란탄에서 담뱃잎 따기>, 말레이시아

 

페르난도 아모르솔로 <모내기> 

 

 게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그림이다. 노동을 하고 있지만 그들의 의상과 동작이 굉장히 멋스럽다. 저 멀리 교회가 보이기도 한다. 소설 속 한 장면 같기도 하다. 20세기 초 마을의 권력은 저 큰 교회가 쥐고 있고 그 마을은 공동 노동을 강조한다. 그곳에 빨간치마를 입은 매력적인 소녀가 살고 있었는데...  라는 내용의 소설말이다.

  

  

                     이인성 <해당화>                                   아사이 추 <농부귀가>                    양즈광 <눈 내리는 밤에 식사 배달하기> 

 

 노동자를 환호하다 Hail the Worker!

 

  

        신두다르소노 수조요노 <앙클룽 연주자>       트루부스 수다르소노 <병아리와 함께 있는 여자>            암리타 세르길 <어머니 인도>

 

 트루부스 수다르소노의 <병아리와 함께 있는 여자>는 본 전시회를 프로모션하는 용도로 쓰여져서 본 전시회를 대표하는 그림같이 생각되어진다. 그런데 우습게도 프로모션용 그림에는 여자의 무릎이하는 나오지 않기 때문에 이 그림의 제목을 전혀 생각해 낼 수 없다. 이 그림의 제목이 병아리와 함께 있는 여자일 줄이야 아래 그림이 짤린 상태에서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라이풍모이 <선수이 노동자>                                          우윈화 <구리광산의 첨병(采铜尖兵)>

 

 아... 진짜 중국 그림때문에 미치겠다. 우리가 일찍이 kbs에서 방영하는 <통일 광장?>같은 프로에서 무수히 보아왔던 북한 그림체를 닮았다. 행주산성에 그려진 역사그림같기도 하고 말이다. 그들의 의도는 너무나 뚜렷해 보인다. 제목을 보라 '첨병'이지 않은가. 이 그림 옆에 걸린 또 다른 중국 화가의 그림은 전봇대에 매달려 일을 하는 여성이었는데 그림체는 똑같고 제목이 '나는 바닷갈매기'정도였다. 정말 이 그림보고 빵 터졌다. 사회주의에서 노동자에 대한 우상화가 아니더라도 노동의 고단함과 숭고함은 수 많은 화폭에서 그 아름다움을 보일 수 있는데 왜 저렇게 했을까...

 

 

                           이시가키 에이타로 <무쇠팔>                                                  비센테 마난살라 <어부들>  

 

전쟁과 리얼리즘 Impact of War 

 

            

               시미즈 토시 <말레이 가교 공병대>                              판깨안 <1972년 하노이 크리스마스 폭격>

 

 

                        데메트리오 디에고 <카파스>                                                  전화황 <전쟁의 낙오자들>

 

 데메트리오 디에고의 <카파스>는 48년도 작품이다. 그 맞은편에 또 다른 필리핀 화가의 작품이 걸려있는데 43년도 작품이고 제목이 점령기였던가 그렇다. 그런데 그 그림은 굉장히 밝다. 여기저기 일장기가 걸려있는데 장에서는 사람들이 신선한 과일을 사고 있는 색채도 밝은 그림이다. 굉장히 아이러니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순간 '친.일.파'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지난 역사동안 지구 곳곳에는 수 많은 정복자와 피정복자가 존재했고 저항이 아닌 순응, 그것도 넘어서 정복자에 빌붙어 있던 사람들이 그들의 지배를 멋진 게 만들어주기 위해서 하는 행위들이란 이런 것이다. 그가 경영자면 그들의 위한 공장을 운영할 것이고, 그가 예술가면 그들을 위한 예술을 할 것이다. 정령기를 그린 사람도 그런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데메트리오 디에고의 <카파스>를 보게 된 것이다. 이건 또 뭔가... 45년 전쟁은 끝났다. 그 후필리핀 역사를 잘 모르기 때문에 순간 이 사람도 친일파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이 떠난 우리는 이렇게 힘들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그들이 피부병을 앓고 있는데 아마 그 당시 전염병 같은 게 돌았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루스타마지 <자유 아니면 죽음>

 

 독재에 대한 저항을 보여주는 그림이다. 필리핀인들은 자신들이 저항으로 독재를 타파하고 민주화를 이루어 냈다고 자랑스러워한다. 하지만 지금 필리핀은 정말 독재가 없는 나라인가? 민다나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또 무엇인가...

 

사회 인식과 비판_새로운 리얼리즘을 향하여  Social Commentary and Criticism

 

미술관에 들어와 4개의 섹션을 보면서도 들지 않았던 생각이 마지막 섹션에서 떠올랐다. '리얼리즘'이 뭐지? 당연히 막연하게 알고 있던 것인데 이 마지막 섹션에 걸려있는 그림들 중 이게 리얼리즘이야?라고 생각되는 그림들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의문을 갖게 된 것이다. 이반 사기토 <나는 누구인가!>, 끼에띠삭 차논낫 <잠재의식 #1>,  마시타 기쿠지 <아케보노 마을 이야기>... 이 그림들이 리얼리즘이란 말인가? 리얼리즘이 대체 뭐야?!   

 

 

                   추아미아티 <말레이 대서사시>                                                             오윤 <가족 II>

  

  

                암론 오마르 <결투 I>                        모하메드 살레후딘 <마을 시장>                           림무후이 <자화상>

 

 

 

                           야마시타 기쿠지 <아케보노 마을 이야기>                                  이반 사기토 <나는 누구인가!>

  

 

                         이종구 <속·농자천하지대본>                                   레나토 아불란 <민족의 드라마>              

 

 이종구의 <속·농자천하지대본>는 쌀포대에 그려진 그림으로 세밀화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작품은 현대국립미술관에서 여러개 보아 익숙하였다. 끼에띠삭 차논낫의 작품은 평면이 아니다. 위에 있는 열린 문은 진짜 나무로 되어 열렸다 닫혔다가 가능하다. 그래... 정말 리얼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