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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 오승우 화백전 - 전 생애에 걸쳐 그린 그림

오승우 화백전

 

 전 생애에 걸쳐 그린 그림

 

 여름이 다가오면서 세상이 정말 푸르다. 덕수궁 돌담길을 지나 푸른 나무들 사이에 서울 시립 미술관이 있다. 건물 외부엔 오승우 전시회 팜플렛이 걸려있다. 산을 그린 그림이다. 그리 와 닿지 않는 그림이다. 그래도 미술관 안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시립 미술관이 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난 그림에 대해서 잘 모른다. 종종 인사동길에 있는 작은 전시회들을 둘러 보거나 해외 유명 그림 전시회를 보기는 하지만 세밀화나 독특한 그림이나 전시물에 대해 놀라움을 가질 뿐 그림에 대한 분석은 하지 못한다. 그저 그것들은 심적으로 다가올 뿐이다. 그래서 가끔 그림을 보고 싶다는 기분을 느낄 때 찾는 곳이 현대 국립 미술관과 서울 시립 미술관이다. 현대 미술관은 너무 멀어서 잘 가지 못하지만 서울 시립 미술관은 종종 찾는 편이다. 시립 미술관이 주는 믿음으로 전시회를 나설 때 뭔지 모르겠고 심적으로도 와 닿는 게 없는 상태에 빠진 적이 없다. 그래서 오늘도 그 믿음을 가지고 미술관으로 들어간다.     

 

 오승우 화백의 전시관에 들어서는 입구에는 작품을 해설해 주는 기계를 무료로 빌릴 수 있었다. 하지만 들어서자마자 큐레이터가 사람들에게 그림에 대해 설명해 주는 모습을 발견하고 냉큼 그의 뒤를 쫓는다. 큐레이터는 그림에 대한 자신의 지식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감정도 이야기한다. 그 부분에서 감상을 방해하기도 하고 내 생각과 비교하며 재미있기도 하다. 

 누구인지도 몰랐던 화가 오승우는 알고 보니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림을 그려 공식적으로 발표하기 시작한 것만 50년이 넘은 화가였다. 혼자 칩거해서 그린 것도 아니다. 젊은 시절부터 한국을 대표하는 수 많은 상도 휩쓸었다. 이 전시회는 그의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 그의 그림 작업을 모두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한 사람의 화가의 삶을 훑어 볼 수 있었다. 전시관은 그가 그림을 그린 시대에 따라 5개의 파트로 나뉘었는데 재밌게도 그 시대마다 소재에 있어 구분이 명확히 되어있었다.

  

 

  첫 번째 파트는 ‘한국의 고적과 민속’인데 화가가 젊은 시절인 1957년부터 60년까지의 사찰과 불상들의 그림이었다. 비교적 사실적으로 그려졌으며 이후의 시기에 그려진 그림들에 비해 구체적으로 그려졌다. 선이 굵어 현실적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지만 힘이 있고 어두운 느낌이다. 솔직히 사실적으로 보였다는 말은 그의 다른 시기의 그림들이 점점 추상적으로 변해 가는 것만 같이 느껴졌기 때문에 그것들에 비해서 그랬다는 것이지 절대적으로 그렇게 느껴졌던 것은 아니다. 고작 20대였던 화가는 왜 사찰과 불상을 그렸던 걸까? 젊은 예술가라면 조금 더 다른 것을 그리고 싶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두 번째 파트는 ‘꽃과 소녀’라는 이름을 내걸고 있으며 말 그대로 그림 속에는 꽃과 소녀가 그려져 있다. 화가의 60년대 초반 작품들이라고 한다. 불과 몇 년 전에 그린 그림들과 너무 다르다. 사찰을 그렸던 힘보다는 몽롱한 그림을 받는다. 몇몇 동화책에 들어갈 만한 독특한 일러스트같은 느낌이랄까. 밝고 옅은 색으로 그려져 예쁘지만 그 연약함에 조금 슬픔이 배어있다고 느껴진다. 나는 굶기와 폭식이 한사람에게 일어나듯이 극과 극은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30대인 화가가 꽃과 소녀를 주제로 많은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은 그가 그 반대의 극인, 소녀와 꽃이 지닌 순수하고 아름다움이 아닌 그 반대에 닿아져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10대 소녀가 아니다. 그의 전작들을 보아도 그가 그런 감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그런데 그는 꽃과 소녀라는 연작의 그림들을 30대가 되어서 쏟아낸다. 그는 세상을 살아가며 더러움과 수치, 비루함 때문에 그 반대의 극인 꽃과 소녀에 침착하게 된 것은 아닐까.
  

 

 세 번째 파트는 ‘한국의 백산’으로 우리나라에 있는 산들을 화가가 직접 다니면서 그렸다고 한다. 큐레이터의 말에 의하면 100개가 넘는 산을 다녔고 그것들 그림으로써 산으로 에워싸인 우리 국토의 내밀한 속삭을 그리고자 했다고 한다. 그의 작품은 정말 크기가 크다. 일반 가정집에서는 도저히 걸어놓을 수 없을 크기다. 빌딩의 로비에나 걸 수 있을 만한 크기다. 이 파트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4장의 그림이다. 색만 다를 뿐 그 형태가 거의 비슷한 그림이 나란히 걸려있다. 설악산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이 표현되었다고 한다. 이 많은 산들 중에는 내가 올라가보았던 산들도 많다. 하지만 그 어떤 산도 내가 느꼈던 산은 없다. 공감하기가 힘든 그림들이었다. 실체가 있는 것들을 그렸기 때문에, 그 실체를 알고 있는 나로서 같이 공감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두꺼운 붓을 사용하여 그려진 산들은 내가 올랐던 그 산들이 아닌 듯했다.   

 

 

 네 번째 파트는 ‘동양의 원형’이란 이름 아래 아시아의 여러 나라의 유적지를 그린 그림이었다. 화가가 90년대에 그린 작품들이다. 정말 여러 나라의 유적지 그림들을 보면서 난 조금은 경박하게도 ‘와, 돈 많이 벌었나보다 이렇게 여행다니면서 그림도 그리고...’라고 생각했었다. 근데 전시관 출구 쪽에 화가의 아시아를 돌아다니며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다큐가 상영되고 있었는데 마치 배낭여행자처럼 여행을 다니다가 그가 화폭에 담고 싶은 장면이 있으면 그 자리에 불편하게 쭈그려 앉아서 그림을 그리고 모습을 보게되었다. 그에게 있어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내가 생각했던 사치가 아니라 캔버스에 꼭 넣고 싶은 모습을 담기위해 다른 것은 신경쓰지 못하는 본능이었다. 가장 공감이 갔던 그림은 중국의 천안문 그림이었는데 배경인 붉은 빛을 띠며 열기가 그림 전체를 뒤덮는 느낌이었다. 나 또한 중국의 천안문에서 그런 느낌을 받기 때문에 화가의 마음이 잘 이해되었다. 독특한 것은 모든 건물을 너무나 눈에 띄는 다른 색으로 테두리를 만들어놓았다는 것이다. 분홍색이나 연두색으로 말이다. 그래서 정말 인상적이었던 것은 하얀 타지마할을 연두색으로 테두리 쳐 두었던 그림이었다. 그 의도는 지금도 이해하기가 힘들다. 이해가 되지 않다가 그 이해되지 않음이 강렬하게 각인되고 말았다.

 

 

 마지막 파트는 화가가 가장 최근까지 그리고 있는 ‘십장생도’들이었다. 굉장히 아기자기하다. 요즘 젊은 작가들이 심장생도 일러스트를 그렸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세련되고 단순하며 예쁘게 그려졌다. 백발이 된 화가의 마음에는 뭔가 큰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 있는 연작들에서 그가 세상에 남겨야 하는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의 작품을 보고 난 후 미술관을 나서는데 마치 그에 대한 한 편의 영화를 본 느낌이었다. 한 사람이 생애 전체를 그의 의식에 흐름에 따라 주제를 정하고 그림을 그리며 살아온 모습을 보았다. 내 삶도 저렇게 정리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난 젊음의 한 가운데 있는 지금 어떤 주제를 정해서 그것에 몰입해야 할까. 열심히 생각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