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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사이를 지나

자궁의 역사 & 버자이너 모놀로그

자궁의 역사 & 버자이너 모놀로그

 우리가 말하지 않던 여성의 몸

 

 

 내가 가지고 있던 자궁에 대한 이미지들은 ‘아기가 사는 곳’, 자궁과 관련된 ‘병’들, 너바나의 앨범 ‘In Uterto’가 전부였다. 자궁은 보이지 않는 부분이고 여성에게만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텔레비전에서 자궁과 관련된 방송을 흘긋 볼 때 말고는 머릿속에 떠오르지 조차 하지 않는 대상이었다. 한마디로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관심을 가져 본 적이 없었다. 무관심은 정보부족을 가져오고 결국은 왜곡을 낳는다.
 내가 가진 무관심처럼 이 책에서 자궁에 대해 언급하고 다루었던 사람들도 사실은 무관심했던걸까? 이 책은 꽤 충격적이었다. 익히 알고 있는 칸트, 루소, 플라톤등이 여성에게 갖고 있던 생각을, 표현된 말들을 담고 있다. 우리는 아직도 그들의 사상을 배우며 그들을 대단한 위치에 올려 놓고 있기 때문에 이것은 더 놀랍다. - 물론 우리가 이들이 가진 편견을 높이 사는 것이 아니긴 하지만. -


 ‘자궁의 역사’는 고대부터 현재까지의 자궁에 대한 인식에 대해 쓰여진 글이다. 이 책의 부제인 ‘의학 ․ 종교 ․ 과학이 왜곡한 여자의 문화사’가 말해 주듯이 이 책은 왜곡되어온 자궁의 역사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여성은 사회적으로 왜곡되어 왔고 지금도 남성과 동등하게 대우 받는다고 확신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사회,문화적으로만 편견과 왜곡의 대상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육체적으로도 왜곡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근거 없는 이야기들이 당연히 받아들여져 왔다. 왜 그럴 수밖에 없었을까? 힘을 가진 자들은 항상 약자를 억누르고 약자들의 힘과 권리를 왜곡한다. 마치 일제 시대의 일본인들이 한국인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현대의 인간이 자연과 동물들에게 그런 것처럼 말이다.

 내게 있어 자궁의 이미지가 거대하고 위대하게 보이도록 만들어 준 영상이 있었다. 그건 매시브 어택의 뮤직비디오였는데 몽환적인 그들의 음악이 흐르고 화면에서는 자궁 속의 태아가 보인다. 그리고 노래에 맞춰 입을 뻐끔거리며 노래를 부르는 아기의 모습은 자궁이 마치 우주와 같은 곳. 좁지만 우주와 같은 넓이를 느낄 수 있고, 아늑하고 편안한 곳 일 거라는 생각을 들게 만든다.
기득권을 차지하고 만 남성이 쌀 한톨 더 먹겠다고, 역겨운 권력과 권위를 내세우겠다고 여성을 왜곡한 것은 알겠는데 어떻게 ‘자궁’을 그렇게 보아왔는지는 이해 할 수 없다.
 자궁은 모든 인류가 태어난 곳이다. 자궁이 없었다면? 인간은 알에서 태어날 것인가? 황새가 물어다 주나? 하늘에서 떨어지나? 사람나무에 데롱데롱 달리나?
 자궁은 모든 인간의 시작이다. 인간의 신체 기관 중 성스럽고 위대하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게다가 태아에게 모든 것을 제공한다. 그냥 편안히 누워 10개월을 보내는 것이다. 일하지 않아도 되면 누군가 무엇을 시키지도 않는다. 게다가 일어나지 않아도 되고 심지어 밥을 떠 먹을 필요도 없다. 이런 천국이 어디있는가! 자궁으로 천국이다!!! 자궁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 달라고 빌어도 모자랄 판이지 않은가.

 우연히도 이 책을 읽기 전에 본 책이 ‘버자이너 모놀로그’였다. 이 책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도 결국은 ‘자궁의 역사’에서 하는 이야기와 같았다.  남성이 의해 왜곡되고 유린당해 온 보지- 이 단어를 말하는 것이 매우 부끄럽고 어색하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든 것도 거의 남자들 때문일 거다. -에 대한 책이다.
  이 두 권의 책을 읽으면서 많이 화가 나고 화끈거렸다. 왜곡되어 온 것들, 왜곡되어지고 있는 것들을 알게 되었고, 알고 있었지만 그것에 대한 개선은 커녕 언급이나 일말의 생각도 하지 않았었다.
 정말 남자는... 이런 존재인가. 여성이 기득권을 가진 집단이었다면, 여성이 기득권을 잡고 있는 문화에서는 이런 현상이 없을까?
그렇다고 모두가 똑같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중요한 것은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를 존중하는 것이다. 그 어떤 것에 우열이 있을 리 만무하지 않은가. 당신은 노력해서 사람으로 태어난 것도, 착하게 살아서 지금의 성性을 가지고 태어난 것도 아니니까. 게다가 생존을 위해서 어떤 성이 더 좋다는 것도 없지 않은가. 정말 웃기는 일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왠지 내가 바보들의 한 족속같다.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