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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사이를 지나

[희곡] 지하철 1호선 - 지하철 1호선 안 인간군상들의 이야기

희곡 지하철 1호선

 지하철 1호선 안 인간군상들의 이야기

 

 지하철 1호선은 굉장히 사회성 짙은 뮤지컬이다. 이 희곡을 읽고 난 후 가장 먼저 했던 일은 이 희곡이 쓰여진 배경은 언제일까찾아보는 일이었다. 이 뮤지컬이 굉장히 오래전부터 무대에 올려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우습게도 그 내용이 오늘날의 한국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뮤지컬은 86년대 독일에서 초연되었고, 김민기에 의해 각색되어 91년부터 우리나라에서 초연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내가 읽은 희곡은 91년 전에 김민기에 의해 각색된 것이다. 그런데 2010년의 한국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 씁쓸한 기분을 느낀다.

 대부분의 등장인물이 이름을 갖지 않는다. 이름을 갖지 못하고 그들이 불리워지는 단어는 각각의 인물이 그들이 속해있는 각 집단을 대표하는 특징을 대표하는 인물임을 말하기 위해서 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우리가 학창시절 학생들에게 애정이 없거나 편리성을 위해 이름이 아닌 1번, 15번 등 번호로서 불렸던 것과 같은 맥락으로 봐야 할 지도 모른다. 서울이라는 대도시 속에서 그들은 각각의 이름을 가질 수 없는 것이다.

 

전체 흐름을 이끌고 가는 인물은 연순이다. 연순은 연변에서 궁전 무용교습소 1급 무용수이지만 제비에 의해 임신을 해서 한국을 찾아와 그를 찾는다. 하지만 주인공이 연순이라고 할 수는 없다. 등장 인물 각각이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대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 배경은 이 극의 제목처럼 지하철 1호선이다. 특정한 장소가 정해진 사회적 신분에 맞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그들을 대변한다면 이 극에서 지하철 1호선은 현재를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는 공간으로서 기능을 하여 그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오팔팔에는 창녀들과 안경을 사랑하는 걸레, 그들의 뒤에서 돈을 버는 칼침등이 섞여 살고 있다. 지금은 표면적으로 사창가는 사라졌다. 그곳에서 일하던 수 많은 여성들은 어디로 갔을까? 정부의 바람처럼 새로운 직업을 가지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 시작했을까? 우리는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음성적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변했을 뿐이고 그 여성들이 새로운 일을 찾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님을 말이다. 솔직히 나는 그들이 다양한 선택권을 가지고 있고, 그 중에 몸을 파는 일을 선택했다면 그리 문제 될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은 애초에 선택권이 없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이건 80년대의 독일도 90년대의 한국도 아닌 지금의 우리 모습이다. 비루한 삶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도달한 곳에서 삶은 점점 더 비참해 지고 있는 것이다. 걸레의 노래 한 곡조가 그 모습을 반영한다. “날짜, 요 몰골, 요 걸레쪽, 병들고 마약중독까지 다들 다니는 중학교도 못 나왔고, 엄만 술만 먹으면 날 때려댔지 엄마 놈팽이한테 당하고 끌려왔지, 나도 엄마가 너무 미워”

 날탕과 깔탕은 얼핏 보면 단순한 불량학생들이지만 연순을 도와주는 모습과 대화에서 따뜻한 마음을 가진 아이들인 것을 알 수 있다. 부모가 이혼 후 재혼해서 각자 살고 있는 날탕의 모습은 희곡 속 인물이 아닌 높아져 가는 이혼율에 의해 나타나는 수 많은 청소년들의 대표일 뿐이다. 날탕은 자신을 이해하고 이야기를 들어주었던 사람은 중학교 때 담임선생님 뿐이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선생님은 전교조를 하다가 돈 봉투를 받지 않겠다고 해서 짤렸다고 한다. 최근에 전교조에 대한 논란이 많다. 20년이나 된 이 희곡 속에서도 전교조에 대한 논란이 있었던 당시 시대를 반영한다. 그 논란이 아직도 계속 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과연 우리는 진보하기는 하였는지, 한 걸음이라도 앞으로 나아가기는 하였는지 의문을 가졌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지난 2일 선거에서 전교조에 대한 악의를 가지고 있는 보수진영의 교육감들이 대거 떨어지면서 사람들과 우리사회에 대한 믿음이 무너지지 않았다. 내가 보아온 전교조 선생님들은 대개 교육에 대한 철학이 있었고 굉장히 열정적이었다. 전교조에 대한 합당한 비판이 아닌 비난을 일삼는 사람들은 그런 그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해 먹을려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뮤지컬을 위한 희곡인만큼 극 중간에 노래가 많이 들어가 있다. 배우들의 대사보다 그 노래의 가사가 신랄할 때가 더 많다. “취직도 못하는 고학력, 입시지옥, 교통지옥, 거대한 독버섯, 서울특별시여” 아... 정말 지금과 똑같지 않은가. 사람 사는 세상 다 똑같고 삶은 반복될 뿐이라고 자조적으로 말하고 지나가기에는 너무 똑같지 않은가! 대학을 졸업하여 직장을 구하지 못하여 결국 대학원에 진학해서 유예시간을 갖지만 대학원을 졸업한다고 해서 직업을 가질 수 있다는 보장 또한 없다. 공교육의 붕괴를 막고 자신을 특기를 살릴 수 있는 교육을 만들겠다고 하지만 최근 발표된 EBS와 수능 연계 발표조차 사교육을 확장시키는 결과를 나았을 뿐이다. 여전히 서울 교통을 꽉 막혀 지하도로를 건설하겠다는 어이없는 계획까지 세우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의 수도 서울은 정말 거대한 독버섯인가. 즐겁게 웃으며 하이라고 말할 수 있는 서울은 서울 홍보 영상에만 볼 수 있는 것일까.

 명품 할인 행사에 늦을까봐 차를 이용하지 않고 지하철 1호선을 이용하는 장관과부, 시장과부, 의원과부, 장성과부의 대화 또한 당시나 지금이나 이어져 오고 있는 우리 사회 지도층에 대한 우리의 불신과 조소가 내 보이고 있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상류층이 어떤 사람들인지 그들 스스로 노래한다. “4.19 민주당 정권도 꺾었죠? 광주도 진압했죠? 6월 항쟁도 네다바이 쳤잖아요” “대모하는 놈들은 모두 다 빨갱이들야. 애들 때 잘 키워야 커서 사람노릇도 하지 군대는 미리 빼고 외국 유학 보내서...” 민주주의 탄압했던 그들은 마치 친일파처럼 계속 정권을 잡고 있고, 평화적인 촛불집회 참여자들을 잡아들인다. 그리고 전쟁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자신들의 자식들은 빼돌린다. 이런 사람들이 계속 배부르게 먹고 살며 우리 사회의 정책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번 선거로 그들이 조금은 뒤로 물러나서 다행이다.

 깜상은 외국인 노동자다 한국에 온지 3년이 지났고 그 동안 손가락은 7개로 줄어들었다. 떠날 날짜가 지나 불법 체류 노동자가 되었고 돈도 못 받지 못했다. 이것 역시 여전한 문제다. 이주 노동자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차별과 경멸이 섞여 있다. 그들이 노동이 지금 한국 산업을 지탱하는 한 축이라는 것을 부정하기는 힘들다. 한국인들이 꺼리는 3D 업종에서 일하고 있는 그들을 우리는 사람으로 대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사람은 어쩜 이렇게 잔인할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다양한 인물들이 지금과 다를 바 없는 당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대변한다. 이 극은 걸레가 지하철에 뛰어들어 죽음을 맞이하면서 끝이 난다. 일상의 한가운데 지하철 1호선은 달리고 그 열차가 이름조차 제대로 불리지 못한, 평생을 힘들게 살아온 여자를 치어 죽인다. 이건 무슨 의미일까. 곰곰이 생각해 본다. 내가 내린 결론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을 의마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특별한 것에 의해 좌절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결국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극에는 현실에 대한 절망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포장마차를 운영하는 할매는 단지 살아 있어서 좋다고 노래한다. 그리고 함께 “자, 다시 꿈을 꿔요. 불같은 인생을. 꿈을 꿔요. 새로운 탄생을. 꿈을 꿔요. 평등한 이 세상을. 꿈을 꿔요. 우리 사랑의 승리를” 노래한다. 절망적인 현실이지만 그 일부는 결국 파멸에 달하고 말지만 남은 자들은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제비의 아이를 가진 연순도 결국 안경의 도움을 받아 아이를 나을 것이다. 그 아이가 다시 절망적인 현실에서 비루한 삶을 살게 될 지도 모르지만 희망을 가지고 있기에 그 삶을 살아 갈 것이다. 지하철 1호선을 타고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