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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사이를 지나

[소설] 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 - 탈연애주의자를 꿈꾸다.

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

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 나는 탈연애주의자다.

 

 오랜만에 본 배수아 소설이었다. 배수아 초기 작품들과 다른 점이라면 등장인물이 능동적이라는 것이다. 한 때 배수아의 책을 찾아 읽던 적이 있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 이것도 저것도 뭔지 모를 때, 배수아의 책들을 찾게 됐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무것도 하는 것이 없으며 물론 능동적이지도 않은 그의 소설 속 인물들이 나를 편안하게 했던 것이라고 생각된다. 구차하지 않은 깔끔한 같은 것, 이유는 ‘그냥’과 ‘싫으니까’면 되고 왜 싫은 가는 ‘그냥’이면 되는. 하지만 이 소설의 인물들은 일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해도 살아가는 방식은 능동적이며 열심히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인물들이다.
 특히 주인공인 '나'는 수의사 자격증을 얻기 위해서 야간 강좌를 듣고, 아프리카로 가기 원하며, 돈을 벌어서 동물 다큐 필름을 찍는 것 또한 꿈이다. 나는 "사람들은 연출을 신뢰한다"며 은희경의 <새의 선물>에 나오는 여자 아이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진짜 자신만의 삶을 꿈꾼다. "나는 아직 서른세 살이다. 서른세 살밖에 안 된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은 너무 많고 읽고 싶은 책도 많고 듣고 싶은 음악도 많다. 아프리카의 석양도 보고 싶고 멸종하기 전에 알래스카의 고래도 보고 싶다. 이 세상 많은 것을 느끼고 싶다. 그것을 위해서 준비해야 한다. 시간이 모자랄 지경이다." '나'는 현재에 능동적으로 사는 것도 모자라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시간에 흐름에 따라 사람은 변한다. 작가의 소설 속 인물도 변한다. 배수아의 인터뷰 중 아직도 기억에 남는 건 여행에 대한 것이었다. 배수아의 여행관은 "뭐 하러요? 다시 되돌아 와야하잖아요. 피곤하기만 하죠 뭐." 이거 읽었을 때 엄청 충격이었다. (물론, 이건 글을 쓰는 사람에 대한 환상 때문에 생기는 건지도.) 이 사람 뭐냐 라고 생각했었는데. 배수아가 독일을 갔다지. 수년을 공항에서 일하면서도 한번도 하지 않았던 여행을 떠난 것이다. 공무원도 그만두고. 사람은 변하고 그 소설 속 인물도 변한다. 물론 소설을 읽는 독자도 변한다.
 그가 말하는 섹스에 관한 생각도 변하였다. <철수>에 나오는 ‘나’는 남자들이 왜 섹스에 집착하는 지 이해할 수 없으며, 별거 아닌 것으로 생각하기에 남자가 원하면 섹스 파트너가 되어준다. 불감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같은 말투를 하고 있다. 하지만 삶의 모습만큼이나 섹스에 관한 것도 이 소설에서는 능동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아무런 감정도 책임도 과장도 미화도 없는 진짜 섹스"를 원하며 "섹스가 끝난 다음에 굳이 쫓아내지 않아도 자기 와이프가 기다리는 집으로 얼른 사라져주는 그런 건실한 사람"을 원한다. 남자가 필요한 것이 아닌 단지 섹스가 필요할 뿐인 것이다. 그렇다면 돈을 주고 섹스 파트너를 사는 것도 무관하다. "길이라도 괜찮고 교진이라도 상관없다. 아, 어쩌면 2PAC이라도 상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때로 남자가 그리운 밤"에 말이다. 어차피 '나'에게 있어 "사랑한다거나 하는 것은 모두 다 핑계일 뿐이다. 결국 인간은 자기 자신 말고는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섹스에 명분은 필요없다. 사랑하지 않는 섹스에 죄의식을 느낄 필요도 없다"
 결혼을 하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며 출산율은 떨어져 간다. 동거하는 사람들은 늘어나고, '결혼은 미친 짓'이라 부르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 ‘좋은 사람과 결혼해서 나를 닮은 아이를 낳아 행복하게 살고 싶다’라는 생각은 구시대의 것으로 촌스러운 생각으로 받아들여지는 경향까지 생겨난다. (사실 친구가 이런 소리를 했을 때 깜짝 놀랬던 생각이 난다. 어쩌면 당연하게 가질 수 있는 생각인데 말이다.) 그렇다면 '나'는? "내가 결혼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게 말해서 가족 제도 자체가 싫은 것이다. 결국 그 거대한 가족 이데올로기 속에서 파생되기 마련인 남녀관계도 싫은 것이다." '나'는 이 세계가 "법과 제도로 통제되고 있"으며 그것들은 "인간의 본성과 어긋나게 어거지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언제 파괴될지 모른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 그 어거지로 만들어진 결혼이라는 제도가 무너져내리고 있는 시기인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결혼을 왜 하지? 단지 같이 있고 싶어서? 그냥 살면 되잖아. 아이들을 낳아야 하니까? 사생아가 어때서? 법이 그렇다고? 그럼 법을 없애면 되잖아. 사람이 만든 법인데, 세상을 너 마음대로 사느냐구? 그래, 난 마음대로 살고 싶어.” 이게 ‘나’의 생각이다. ‘나’의 생각에 반박하기 위해서는 결혼을 왜 하는지 말 해야 한다. 물론 단지 같이 있고 싶어서라는 이유는 사절이다. 이문열은 ‘레테의 연가’에서 ‘사랑은 그저 사랑으로만 있으면 안되는가. 처음부터 끝까지 그런 사회제도와 도덕률로부터 자유로와 질 수 있는 사랑은 없는가.’를 말한다. 주장은 같으나 이유는 다르다. 이문열의 말은 뽀샤시 사진같은 느낌이며 배수아의 말은 깨진 유리같은 느낌이다. 배수아에게 "사랑은 아무것도 아니며 처음부터 아무것도 아니었고 지나간 다음에는 더더욱 아무것도 아니"다.
“결혼은 나약한 선택이다. 왜냐하면 그것을 가지기 위해서 버려야 하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혼이라는 불이익을 감수하지 않으면 단 한 명의 섹스 파트너에게 합법적인 독점권을 인정해 주며 살아야 한다. 가정의 운영이라는 무임노동, 원하지 않는 새로운 친척들간의 관계, 성문화되어 있지는 않으나 관습적으로, 그러나 무시 못 할 강도의 제약을 가지고 강요되는 사회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무임노동은 결혼을 하지 않아도 생길 수 있는 것이고, 친척들간의 관계는 ‘내’가 직장에서 하듯이 ‘내’가 뭔가를 얻기 위한 전략적 관계로 보면 그만일 수도 있다. 한 명의 섹스 파트너에 대한 문제는 일부일처제라는 결혼제도에서 비롯되는데 그것에 대해 ‘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역사적으로 일부일처제가 과연 정당한 제도인가, 옳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 현실의 안위 때문에 그것을 선택한다면 비겁자에 지나지 않는다.”

 

원시에 일부일처제는 없었을 것이고, 다부다처제가 지배적이었을 것이다. 소유와 지배의 개념과 함께 생겨난 일부일처제는 사람을 물질로 보고 그것을 잃고 싶지 않다는 욕구에서 시작된다. 더 이상 투쟁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 안정된 상황을 꿈꾸는 사람들에 의해서 결혼제도는 존속되어 왔다.
 결혼제도가 사라진다면 그 후엔 무엇이 있을까? 동거라는 것이 있으니 크게 달라지는 모습은 없을 것 같다. 이혼이라는 것도 없어질 것이고, 육아는 가족보다는 국가의 몫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육아에 대한 책임감이 약화될 것 같다는 생각은 꽤 강하게 드는데, 그 아이들이 성장해서 어떤 모습이 될 지는 알 수가 없다. 내가 권장하는 것은 아이를 낳지 말라. 는 거다. 당신의 유전자를 번식시켜야 하는가? 사회적 기득권을 차지하기 위해서 아내와 남편을 만들고 아이를 가져야 하는가? 인류가 종말하면 어떤가. 한 종의 생물이 사라짐으로써 수 많은 새로운, 사라졌던 생물군이 나타날 것이다. (지금 결혼이 마치 상품을 구입하는 듯 한 모습을 하고 있다. “결혼은 전략이고, 비즈니스”다. 결혼은 이제 생존을 위해 필요한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의 생활방식처럼 섹스를 넘어선 동반자와, 아이는 당신이 당신의 일에 집중하는데 걸림돌이 될 뿐이다. 성취 할 수 있는 일이 줄어들 뿐이다. 당신의 삶의 목표가 가족을 이루는 것이라면... 할 말 없다. <이 사람 소설을 읽고 나면 생각이 극단으로 간다. 참,,,)
'나'는 결혼은 선택이라고 말한다. 인생의 수 많은 선택 중 하나일 뿐 절대적이고 필수적인 것이 아니라고. 맞는 말이다. 언제부터 결혼은 필수가 되었을까?
위에서 언급했듯이 결혼을 하게 되면 단 한명의 섹스파트너에게 독점권을 주어야 한다. ‘나’와는 무관한 듯 (‘나’는 사랑을 부정하니까.)하지만 결혼 이후의 다음 사랑은 없어야 하는가? 결혼 이후의 사랑을 우리는 불륜이라고 말한다. 불륜이란 무엇인가? 도덕적이지 않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사는 것이 불륜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을 하는 것은 불륜이라고 말 할 수 없는 것이다. 결국 후자가 더욱 우리가 소중히 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당연한 것으로 자유롭게 이루어지기 위해 결혼제도는 없어져야만 하는 것이 된다.
소설의 후반 진숙이 이민 할 것임을 밝히며 말한다 "돈을 모은다면 야간 대학이라도 다녀봐야지, 뭔가 길이 있지 않을까, 어느 순간부턴가 난 참을 수 없을 것 같아서, 내가 쓸모없는 존재라는 생각에서 벗어나기가 힘들었어." 도. 대. 체. 이게 뭔가? 계몽소설인가. 맘에 안 든다. ‘나’는 서른 셋의 여자이며 친구들 또한 같은 나이의 미혼 여성들이다. 한국에서 서른 셋의 여자의 평균은 아마 결혼을 하였고, 아이가 하나, 혹은 둘이 있고, 그 아이는 학교를 다니기 전일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 ‘나’는 가족과 사회로부터 많은 압박을 받는다. 하지만 ‘나’는 “연애에 빠져서 설탕물 속을 헤매는 파리가 되기 싫다”는 인물이지 않은가. 게다가 “연애라는 게임에서 패배하지 않는 방법”을 하는 인물이기에 괜찮다. “그것은 脫戀愛主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