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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사이를 지나

[소설] 망루 - 망루로 내몰린 약자들

소설 망루

 

 그들은 왜 망루에 올라야만 했는가

 

 언젠가부터 '망루'라는 단어에 떠오르는 이미지는 용산참사의 그 망루가 되었다. 주원규의 <망루>도 용산 참사를 모티브로 해 지어진 소설이다. 종교적인면만 제외한다면 거의 현실과 일치하는 면을 보인다. 그런데 용산참사 희생자들의 장례예배에 서초동 대법원 맞은 편에 2100억이 넘는 초대형교회 건축을 하겠다고 해 논란이 된 오정현 목사가 설교자로 나섰다고 한다. 이 기사를 보고 조정인 목사가 떠올랐다. 

 

 "돈 한푼 주지 않고 변변한 잠자리 하나 없이 일 시키고 부려먹었으면, 그만큼 했으면 된 거 아냐! 당신들 신은 미쳤어. 미치광이라고! 당신이나 돌아가! 이제 이 사람 그만 괴롭히란 말이야."

 

 작가 자신이 대안 교회를 이끄는 사람으로서 종교에 대한 많은 고민을 한 흔적이 엿보인다. '기적'을 행하는 남자의 놀라운 모습에도 소설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는 커녕 '그는 어디에 있을까'라는 의문을 갖게 한다. 정치적 경제적 이유로 밀리고 밀려 결국 망루 위에 올라가게 된 사람들을 이야기한다. 소설은 마치 80년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이것이 21세기의 G20을 개최한다고 '우리의 위치가 이 정도라고' 떠들어대는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현실에서 거대 교회와 관련된 다양한 일들이 존재한다. 논쟁점은 '믿음'에 대한 것이 아니다. 그들의 행위가 정치인과 경제인의 그것과 다르지 않으면서 그것을 '믿음'의 문제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이 문제다.

 

 교회에서 담임 목사와 전도사의 관계는 단순한 직장 상사와 부하 직원과의 관계와는 차원이 다르다. 성직의 거룩함은 철저하고도 절대적인, 무모한 계급 사회로의 몰입을 당연시하게 만드는 일종의 터부가 형성되어 있다. 그러한 특별한 체계 안에 위치한 전도사에게 있어 담임목사란 존재는 유일신이요 절대자다. 그의 명령을 거역한다는 건 곧 신의 금령을 어기는 것과 동일시되는 것이다.

 

 국적과 부모를 선택할 수 없듯 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선택해서가 아니라 태어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특정 종교를 갖게 된다. 나 또한 일가친척이 모두 카톨릭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어렸을 때부터 성당에 다녔고 세례를 받았다. 하지만 곧 종교에 대한 흥미를 잃어 사춘기때부터 전혀 가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의 장로군과 목사씨는 그럴 수 없다. 아무리 벗어나려해도 벗어날 수 없는 깊은 곳에서 태어난 그들은 그럴 수 없다.

 종교와 철거민들의 이야기가 잘 융합되어 있다. 내가 고민했던 종교적 문제와는 많이 다른 이슈에 대한 논의에서 공감은 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었지만 말이다. '권력'은 갖게 되는 순간 놓을 수 없는 악마적 성실을 가지고 있나 보다. 최근에 읽은 <A>가 떠오르기도 한다. 걷잡을 수 없는 욕망의 끝에 선 <A>의 어머니와 <망루>의 목사.

 

 

  

 왜 이런 대화체가 사용되었는 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었다. 가령 맹호가 민우에게 처음으로 말을 하는 장면에서 아래와 같이 말하는데 그 앞까지 맹호의 이미지와 맞지 않는 방식인 것 같다. 

 

 용서 따위 구하려고 하는 말은 아니니 착각하지 말아요. 난 결국 사람에 불과했어요. 구차스럽지만 어쩔 수 없는 사람. 나약하고 무력한, 감정과 욕망에 충실한 사람 말이예요. 자식이 수술비가 없어 죽어간다는데 과연 그 순간 어떤 부모가 가만있을 수 있을까요? 재림 예수는 우리를 외면하고 있고, 윤서의 광기와 이상을 따르기엔 너무나 현실은 차가웠어요.

 

  또 민우와 현민(학생)의 대화에서 민우의 말투는 작가가 '이런식으로 말하는 걸로' 메모 해 둔것을 그대로 책에 써버린 느낌이다. '~느냐'가 뭔가. 

 

  "올라가실 거예요?"

  "지금 모두 저기 있느냐?"

   <중략>

  "4층까지? 위험하지 않는냐?"

 

 

 용산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두개의 문>이 만들어졌다. 호응도 작지 않다. 나는 유태인이 아니니까라는 생각으로 히틀러의 만행을 두려움과 무관심으로 바라만 보던 사람들에게 당신이 문득 유태인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때는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그저 바라보기만 할꺼다. 나는 억울한 일을 당하면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대응하지 화염병을 던질 일은 없을꺼라고 말하겠지만 그들도 처음부터 화염병을 던지지는 않았을꺼라고 생각되지 않는가? 어느 쪽이 되었든 수백명 앞에서 자신의 논리를 당당히 내뱉기 위해서 이 사건을 자세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